영화 '드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말맛' 하면 떠오르는 연출자인 이병헌 감독이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무려 10년을 준비한 프로젝트 '드림'으로 말이다. 특유의 말맛 가득한 대사로 시작해 천천히 조금씩 인물들에 젖어 들게 만든다. 그렇게 편견을 걷어낸 감독은 온전한 감동을 안긴다. 감독은 전반의 웃음, 후반의 실화, 그렇게 '감동'이라는 골을 넣었다.
선수 생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은 소울리스 축구 선수 홍대(박서준)은 계획도, 의지도 없던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으로 재능기부에 나서게 된다. 각본 없는 각본으로 열정리스 현실파 PD 소민(아이유)이 다큐 제작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뜯어진 운동화와 슬리퍼, 늘어진 반소매 티셔츠를 필두로 운동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특별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택견인지 축구인지 헷갈리는 실력과 발보다 말이 앞서는 홈리스(homeless, 집이 없는 사람) 선수들의 환장할 팀워크, 다큐에 대사와 상황 그리고 진정성 없는 연출을 강요하는 소민에 기가 막히는 감독 홍대. 하지만 포기할 틈도 없이, 월드컵 출전일은 코앞으로 다가온다.
영화 '드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천만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멜로가 체질' 등 특유의 말맛 가득한 대사와 매력 넘치는 캐릭터를 선보여 온 이병헌 감독이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드림'은 지난 2010년 홈리스 월드컵 실화를 모티브로 새롭게 창작된 영화다.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홈리스 월드컵을 알게 된 이 감독은 홈리스들을 취재하고, 201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홈리스 월드컵에 동행하는 등 무려 8년에 걸쳐 영화를 준비하고 완성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을 합치면 10년 프로젝트다.
'드림'은 말맛과 유머를 동원해 지루하지 않게 천천히 조금씩 인물들에게 다가가 결국 스며들게 한다. 처음엔 말맛과 유머, 티키타카가 눈에 보이지만 어느새 각 인물의 얼굴, 그들 각각의 '드림'(꿈)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감독은 그렇게 한 걸음씩 차근차근 밟아나가며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영화 '드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1600만 관객을 '말'로 웃긴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의 작품답게 '드림' 역시 특유의 '말맛'이 가득하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찰진 대사가 빠른 속도로 배우의 입을 통해 리듬감 있게 나오는 걸 듣다 보면 "역시 이병헌 감독"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병헌 감독 표' 대사가 배우 사이에서 탁구처럼 핑퐁 거리며 오갈 때 이게 바로 '티키타카'란 걸 저절로 깨닫게 된다.
영화에는 곳곳에 이병헌 감독의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는 유머 코드도 녹아 있고, 각 캐릭터가 자기 색을 갖고 활발하게 움직인다. 말맛 가득한 대사와 티키타카만큼 감독의 유머와 캐릭터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영화 전반은 그렇게 감독 특유의 색채로 가득 차 있기에 유쾌하게 흘러간다. 템포 역시 빠르게 흘러가며 지루할 새가 없다.
감독의 색을 진하게 느끼며 전반전이 흘러간 후 시작되는 후반전은 실화가 갖는 감동을 본격적으로 펼쳐낸다. '홈리스', 흔히 우리가 사회의 밑바닥에 도달했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찬란하고 순수한 도전과 열정이 후반부의 중심축이다.
영화 '드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다양한 사연 속에는 우리네 삶과 현대사와 사회상이 담겨 있다. 홈리스를 대거 양산했던 IMF 사태, 물질적 성공에 취해 가족을 등한시하는 가장의 모습, 홈리스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상대적 강자들의 태도 등이 각 인물의 사연과 현재 속에서 드러난다.
그들의 사연과 현재를 본다는 건 정말 평범한 우리의 삶 한가운데를 바라보는 일이자 아무도 보려 하지 않았던 사회 한구석을 마주하는 일이다. 또한 그들에게 없는 건 물리적인 집이 아니라 마음 둘 곳이다. 그건 홈리스뿐 아니라 홍대나 소민도 마찬가지고,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드림'은 갈 곳 없는 이들이 정착할 곳을 찾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영화 전반부에 유머와 말맛을 특히 더 부각한 건 어쩌면 감독의 세심한 배려일지 모른다. 이러한 장치들은 우리가 편견으로 바라보는 '홈리스'라는 사회적 약자에게서 '편견'을 들어내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한다. '홈리스'라는 수식어 대신 '말맛'과 '코미디'가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볍게, 조금은 편안하게 먼저 다가가며 관객들은 '홈리스'가 아닌 '캐릭터'를 온전히 바라보게 된다. 편견을 걷어내고 다가간 인물들의 삶과 꿈을 들여다보게 될 때 감동 역시 오롯이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홈리스는 우리가 회피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이웃임을 자연스럽게 알린다. 그들도, 우리도 모두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보게 해준다.
영화 '드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사실 후반부의 홈리스 월드컵은 매우 빤한 이야기다. 비록 삶은 거리로 내던져졌지만, 인간으로서 바로 서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는,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선다는 이야기는 이른바 신파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그려내는 연출 또한 예측 가능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들의 도전을 지켜보고 응원하게 되는 건, 앞서 감독이 배려 깊게 쌓아 올린 그들을 향한 시선 덕분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캐릭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건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기도 하다. 박서준과 아이유는 이병헌 감독의 세계 안에서 말맛 가득한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분위기를 살리기도 하고 감동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또한 김종수, 고창석, 정승길, 이현우, 양현민, 홍완표, 허준석 등 배우들의 호연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게 하며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이끈다. 여기에 박명훈은 스크린을 찌르고 싶다는 욕망이 들 정도로 특유의 큰 눈망울이 반짝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125분 상영, 4월 26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드림' 2차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