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검찰이 27일 압수수색한 서울 강남구의 H투자컨설팅 사무실. 박초롱·박성완 기자국내 주식시장에서 이번 주 초부터 불거진 특정 종목들의 '무더기 하한가 사태' 배경에 특정 세력의 주가조작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금융당국의 조사도 본격화 되는 기류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총괄과는 27일 금융감독원과 서울남부지검, 한국거래소 인력들과 함께 문제의 주가조작 세력으로 지목된 이들의 서울 강남구 소재 H투자컨설팅업체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전방위로 압수수색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번 압수수색에 34명이 투입됐다며 "국민 입장에서 관계기관이 협력해서 신속히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이들은 최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연속으로 하한가를 기록한 특정 종목들 가운데 다수 종목 주가를 장기간 인위적으로 부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투자자를 유치한 기존 회원에게 수익 일부를 떼어주는 다단계 방식으로 대규모 자금을 모으고, 투자자들 명의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주식을 사고파는 통정거래를 통해 주가를 조작했다는 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의 주요 골자다.
통정거래란 매수자와 매도자가 사전에 미리 정해둔 가격으로 주식을 서로 사고파는 행위로서 대표적인 주가조작 수법이다. 당국도 이를 의심할 만한 주가 흐름과 단서를 포착해 압수 자료들을 분석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김주현 위원장은 "(주가조작) 수법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보고 있지만 현재 수사를 시작하는 단계여서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주가조작 의심 세력이 주식 매매 수익에 대한 수수료를 골프업체 레슨비 결제 방식으로 우회해 받았다는 구체적 정황까지 거론되면서 이번 압수수색 대상엔 해당 골프업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당 세력에 투자했거나 투자 제의를 받은 이들 가운데에는 유명인도 포함돼 파장이 크다.
그 중 한 명인 가수 임창정씨는 이날 SNS에 입장문을 올리고 "투자해서 큰 손해를 봤을 뿐 다른 투자자들에게 주식과 관련해 어떠한 유치나 영업 행위를 하지 않았다. 동료에게 투자를 권유했다는 내용은 명백한 오보"라며 "누구에게도 금전적 피해를 입힌 일이 없고 잘못된 이득을 취한 적 또한 없다"고 해명했다.
여의도 증권가 모습. 연합뉴스임씨는 지인의 소개로 본인 기획사에 대한 투자자로서 이번 사태 관련자들을 알게 됐다며 "이들은 저평가된 우량 기업에 대한 가치 투자를 통해 재력 있고 신망 있는 유명 자산가들의 주식계좌를 일임 받아 재테크 관리를 하고 있다며 높은 수익률이 실현된 주가 그래프와 계좌 잔고 등을 제시하면서 제게 주식 매매대금을 본인들의 운용사에 재테크할 것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를 믿고 계좌를 개설해 주식 대금 일부를 맡겼다는 임씨는 "주식 거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그들이) 알려주지 않았고, '어카운트인포'라는 앱만 깔아줬다"며 "안타깝게도 이번 일이 터질 때까지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언론보도가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방송인 노홍철씨는 투자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무더기 하한가 사태는 지난 24일 외국계 증권사 SG증권 창구를 통해 대량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삼천리‧대성홀딩스‧서울가스‧선광‧세방‧다우데이타‧다올투자증권‧하림지주 등 8개 종목의 주가가 일제히 하한가로 마감하며 불거졌다.
해당 종목 가운데 대성홀딩스(-29.98%), 선광(-29.86%), 서울가스(-30.00%) 주가는 이날까지 나흘 연속 하한가로 장을 마쳤다. 삼천리의 경우 전날까지 사흘 연속 이어오던 하한가 행진은 가까스로 멈췄지만 하락폭이 27.19%에 달했다. 다우데이타(-4.24%), 하림지주(-3.40%), 다올투자증권(-2.89%)은 낙폭을 줄였고, 세방 주가는 사태 후 처음으로 상승 전환(+3.50%)해 거래를 마쳤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시장에선 SG증권과 계약을 맺은 차액결제거래(CFD) 계좌에서 매도 물량이 대거 쏟아지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CFD는 투자주체가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채 진입 가격과 청산 가격의 차액만 결제하는 장외파생계약이다. 최소 증거금률 40%로 2.5배의 레버리지(차입)를 일으켜 투자할 수 있다. 예컨대 40만원의 증거금만 있으면 100만 원 어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식이다. CFD 거래 시 투자 주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증권사 명의로 거래되고, 실제 보유액 대비 대량 주식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가조작에 악용될 소지도 크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급락 종목들의 주가는 공통적으로 작년 하반기 급등하거나 그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오르는 등 이상 흐름을 보였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조사 시점이 뒤늦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주현 위원장은 이번 의혹 인지 시점을 "최근"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이번 사건에 레버리지 투자 방식이 악용되다가 조사 착수 시점 전후로 대규모 주식 처분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이번 사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부지검은 지난 24일 주가 조작 의혹 관련자 10명을 출국금지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