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호협회가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맞은편에서 '간호법 제정을 위한 단식돌입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은지 기자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싼 의료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간호사 단체가 '무기한 단식 돌입'을 선언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권에 법안 공포를 촉구했다.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해당 법에 반대하는 13개 직역단체가 11일 '2차 연가투쟁'을 예고한 상황에서 '맞불'을 놓은 것이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부터 간호법 제정을 위한 단식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단식 농성에 참여하기로 한 간호계 대표들은 간협 김영경 회장과 탁영란 제1부회장, 윤원숙 이사, 박남희 부산시 간호사회장 등이다.
이들은 중구 간협회관 앞에 농성 천막 등이 준비되는 대로 오후 5시 본격적으로 단식을 시작한다.
앞서 전날 간협은 의사·간호조무사 등
보건복지의료연대가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압박하며 오는 17일 총파업 계획까지 밝힌 것을 두고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은 사망선고나 다름없다"고 반발한 바 있다.
김영경 회장은 이날 회견에서 "저는
전국의 50만 간호사와 12만 간호대학생을 대표해 이 시간부터 사생결단의 각오로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간호법 제정은 국민의 뜻을 담아 지난 2005년, 2019년, 2021년 세 번의 국회 입법 시도 끝에 본회의 의결이란 결실을 맺은 것"이라며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공공연하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하면서, 그간의 간호법 논의와 입법과정을 모두 물거품으로 돌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단식을 결심한 이유로는 '복지부와 여당의 태도'를 첫손에 꼽았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그간 장·차관 및 실무관계자 등의 발언을 통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 왔다.
조규홍 장관은 지난달 27일 간호법 통과 직후 "보건의료계가 간호법 찬반으로 크게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 주도로 간호법이 의결되어 매우 안타깝고 현장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박민수 제2차관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았다.
70년간 (유지돼온) 의료법 통일체계를 흔드는 법"이라며 부정적 의견을 표했다.
간협은 이에 대해 정작 반대를 뒷받침할 '법적인 근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회장은 "간호법 제정은 법률행위이기에 구체적으로 몇 조 몇 항에 법적인 문제가 있어서 반대한다고 주장해야 한다"며
"(복지부의 논리는) 결국 의료계 갈등 발생으로 협력이 저해된다는 이유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장관의 언급과 마찬가지로 간호법 자체는 의료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는 법안 심사과정에서 모든 갈등과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함이었다"고 짚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당초 발의안과 달리 현 의료법과 동일한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로 명시된 점 등을 지적한 것이다.
김 회장은 "그런데
왜 간호법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페이스북 홍보를 하고 방송 인터뷰를 하면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헌법상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들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대한간호협회가 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간호법 제정 약속, 이행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중재안을 제시했다가 협상이 좌초되자 본회의에서 표결을 거부한 여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간호사 출신으로 법안을 발의한 최연숙 의원 등을 제외하곤 투표에 불참했다. 김 회장은 "2021년 국민의힘 소속 의원 2명이 간호법을 발의했고, 46명의 당 소속 의원이 발의에 동참했다"며 "법안 심사과정에서도 공감대가 이어져 4차례의 강도 높은 심의 끝에 여야 합의로 간호법안(대안)를 마련했던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간호법 제정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직접 약속한 사항일 뿐 아니라 원희룡 선대본부 정책본부장과 보건복지위 강기윤 간사도 약속했던 것"이라며
"지금 (여당은) 간호법 자체를 형해화하고 있다. 국가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여당으로서 공정과 상식에 합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간호법 제정 시 간호사의 단독 진료 또는 개원으로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될 거라고 밝힌 의협, 간호사들이 간호조무사의 업무 영역을 침해한다고 호소한 간무협 등의 주장은 모두 '가짜 뉴스'라고도 반박했다.
간협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검토보고서 그 어디에도 이러한 주장(들)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고 복지부도 동의하지 않았다"며 "원안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두 단체 의견을 반영했는데 뭐가 부족해 허위 주장을 그치지 않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또한 "이제는 두 단체가 힘을 모아 휴업을 빙자한 단체 진료거부를 일삼으며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즉각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불법) 집단 진료거부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을 향해 "전 세계 대다수 국가는 이미 간호법이 있다. 지금 제정된다고 해도 다른 국가에 비하면 너무 늦은 것"이라며
"부디 간호법이 최종적인 법률로 확정될 수 있도록 공포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간협은 "간호사들은 100년의 역사 동안 오직 헌신만 알고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우리 대표자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시대적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며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우리 자신을 던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국민을 볼모로 한 파업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직역단체가 모인 보건복지의료연대가 8일 오후 의협회관 대강당에서 11일 예정된 '대한민국 보건의료 2차 잠시멈춤' 설명회를 개최했다. 의료연대 제공 한편, 의료연대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11일 간호법 저지 등을 위한 2차 연가투쟁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종의 '워밍업'이었던 지난 3일 1차 연가투쟁보다 더 많은 회원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들은 당일 부분 단축 진료를 하며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열리는 집회 등에 참가한다.
특히 치과의사들은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 총회 결의에 따라, 하루 동안 휴진할 방침이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2차 투쟁은 1차 때보다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17일 전면 파업에 앞서 수위를 높여가는 과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