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내 한 초등학교 운동장 모습. 박창주 기자"다른 여자 아이들에게도 말을 걸던 모습을 분명히 봤어요.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이 더 있을 것 같은데…"
A(28·여)씨는 20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지난
2003년 경기 안양시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한
3월 무렵이다. 등굣길 운동장 쪽에 서 있던
파란색 1톤 트럭 운전석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30~4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아픈데 차에 좀 타줄 수 있느냐고 해서 어린 마음에 무서우니까… 아저씨와 있었던 일은 부모님과 학교에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었죠."그가 조수석으로 다가서자 '아저씨'는 돌변했다. 그곳에서 벌어진 성폭력은 오롯이 A씨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12일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서면·전화 인터뷰에서
"이제라도 알려지면 목격자나 또 다른 피해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아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도움받지 못한 '원망'…"아직도 사람이 두렵다"
상처가 더 아프고 덧났던 건 '외면' 때문이었다고 했다. 사건 직후 울면서 교실에 들어갔던 A씨는 담임교사에게 "아저씨 잡아달라"며 도움을 청했던 기억이 또렷하지만, 관련 기록은 교육 기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믿었던 엄마에게도 털어놨지만 돌아온 답변은 "아무에게 말하지 말고 잊으라"는 말뿐이었다. 되레 A씨는 한 달여 지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와 전학을 가야만 했다. 영문도 모른 채였다.
A씨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쉬쉬하는 분위기였던 것 아닌가 짐작된다"며 "힘 없는 아이를 지켜줘야 할 어른들이 왜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았던 것인지 해명조차 없으니 답답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정신적 충격에 따른 트라우마로 대인기피증이 생긴 A씨는 학창시절 내내 친구를 사귀는 일도 녹록지 않았다. 낯선 이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되면서 사회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사람 만날 때마다 무섭고,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며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하다 보니 애써 상처를 감추려는 과정에서 나오는 행동들로 오해를 사거나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다시 용기 냈지만 수사마저 중단, "실마리 될 제보 나오길"
황진환 기자성인이 된 A씨는 가까스로 다시 용기를 내 경찰에 고소장을 냈지만, 그 과정에서 지난 날을 떠올리느라 더 큰 불안을 떠안아야만 했다. "악몽을 되새기느라 증상이 심해져 심리상담센터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기다렸지만 결과를 얻진 못했다.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와 몽타주 조사, 미제사건과 포터 차량 차주 확인 등을 거치고도 용의자를 특정할 단서를 찾지 못하면서다. 10개월간 수사는 결국 중단 된 상황.
그는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사라진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럼에도 A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각오다. 비록 단서는 적지만 실마리가 될 만한 추가 증언 등이 나오길 바라는 취지다.
A씨는 "학교가 아파트로 둘러싸인 데다 등교 중 그 남성과 대화하던 학생들도 있어서 목격자 또는 제2의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다"며 "새로운 제보자가 나타나거나 또래 졸업생 대상으로 탐문 등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유사한 사건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