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를 넘어 임진강 하류를 통해 침투하다 아군 경비병에 의해 사살된 무장 공비의 사체와 M16 소총 등 노획물들. 연합뉴스지난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인해 일가족 5명을 잃은 고(故) 고원식씨의 유가족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19일 고(故) 고원식씨 아들 고모 씨의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중심에 따르면 춘천지법 강릉지원 오지영 판사는 지난 18일 고씨 측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원고 측의 소장 등에 따르면 1968년 11월 20일 강원 평창에서 고원식(당시 36세)씨의 아버지(60)와 어머니(61), 아내(32), 첫째 딸(6), 둘째 딸(3)이 집 앞 개울가에서 무장 공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사건 당시 고씨는 예비군소대장이었으며 근무를 위해 집을 비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원고 측은 "이 사건 불법행위는 휴전상황에서 유지되던 평화와 안녕을 파괴한 것으로 가해자인 피고의 불법성에 대한 비난의 정도가 매우 크다"며 "부모의 사망으로 인한 위자료 각 1억5천만 원과 배우자와 자녀들의 사망으로 인한 위자료 각 2억 원 등 총 9억 원을 배상할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고인의 위자료 청구 채권을 상속한 원고에게 2억 2500만 원을, 고 김정일의 손해배상책임을 상속한 김정은은 909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원고 측은 북한을 상대로 2억 2500만 원 중 일부 금액인 4천만 원의 배상을 먼저 청구했으며, 김정은에 대해서는 909만 원 전액을 청구했다.
고(故) 고원식씨의 유가족이 낸 소장. 법무법인 중심 제공원고 측은 "일가족이 참혹하고 잔인하게 살해되기까지 느꼈을 정신적·육체적인 고통과 함께 그 시체가 유기되는 과정까지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고인이 느꼈을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일가족들이 그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일실수익(사망에 따른 예상 수입 상실분)을 산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배우자가 매우 젊었고, 자녀들도 매우 어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손해액 산정 사유를 밝혔다.
원고 측은 통일부 등을 통해 북한 측에 소장을 보낼 방법을 구했으나 마땅한 방법이 없어 재판은 공시송달로 진행됐다. 공시송달은 송달 대상자의 주소 또는 근무 장소를 알 수 없는 등의 이유로 통상의 방법으로 서류를 보낼 수 없는 경우 서류를 법원에 보관하고, 그 사유를 법원 게시판 등에 공고해 상대방이 언제라도 받을 수 있게 하는 송달 방법이다.
이번 소송과 관련해 재판부는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청구액 전액을 인용, 북한과 김정은에게 각각 4천만 원과 909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한 배상액에 대해서는 사건이 발생했던 1968년 11월 20일부터 2022년 2월 18일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이번 재판에서 승소한 원고 측은 국내 방송·출판사들이 북한 저작물을 사용하면서 북한에 내야 할 저작권료 20억 원 가량이 법원에 공탁돼 있는 만큼 이 금액에 대해서도 강제집행을 시도할 예정이다.
다만 국군포로 및 납북자 가족들이 제기한 선행 사건에서 실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상대로 추심금 소송을 제기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를 한 사례가 있어, 복잡한 법리를 치밀하게 다듬어 추심금 소송을 제기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고씨의 유가족들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도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한 결과 지난 10일 조사개시 결정을 통지받았다.
법무법인 중심 류재율 변호사는 "이번 판결과 진실화해위 조사 개시 결정을 계기로 당시 반인륜적인 범죄로 끔찍한 피해를 보고도 국가적 차원에서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나 그 유가족들에게 실질적인 최소한의 보상이나 지원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