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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기생충의 시대와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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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기생충의 시대와 인어공주

    김봉석 문화평론가김봉석 문화평론가지난 5월 24일 개봉한 <인어공주>는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를 리메이크한 실사영화에서, 왜 하얀 피부의 인어공주 에리얼을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연기하냐는 비난이었다. 특정 영화에 좌표를 찍어 평점 테러를 많이 하고, 알바 댓글도 많은 네이버 영화 평점에서 <인어공주>는 5월 27일 6점대로 하락했다. 별점 하나를 준 평가도 유난히 많아졌다.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해외에서도 <인어공주>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점점 관객이 들면서 좋은 평가가 늘어나고 있다. 27일 현재, 영화 사이트 '로튼 토마토'의 관객 평점은 95%가 긍정이다. 무엇보다 할리 베일리의 노래와 연기가 뛰어나다는 칭찬이 많다.

    왜 흑인이 인어공주를 연기하냐는 비난은 틀렸다. <반지의 제왕> 프리퀄인 <힘의 반지>에 흑인 엘프가 등장했을 때 나온 비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엘프도, 인어도 가상의 존재다. 서양에서 인어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으로 볼 수 있다. 바다에 살고,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홀리는 존재. 처음에는 인간과 새를 합친 형상으로 묘사되었지만, 중세를 지나며 인간과 물고기가 합쳐진 지금의 인어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동양의 인어는 일종의 요괴로 간주되었고, 인간이 인어 고기를 먹었다는 설화도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설화에 등장하는 인어는 하얀 피부였을까?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원작인 <인어공주>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손이 19세기 초에 발표한 동화다. 안데르손의 원작은 왕자를 사랑했지만 함께 하지 못한 인어공주가 죽어 공기의 정령이 되는 결말이었다. 동성애자인 안데르손의 상황을 은유한 비극이었고, 의미심장하다. 이후 <인어공주>의 판본 대부분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비극적인 결말이 된다. <인어공주>는 아이들이 필수적으로 읽는 동화였고,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인어공주>는 세계 각국의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디즈니가 당연히 만들어야 했을 이야기다.

    디즈니 라이브 액션 '인어공주'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디즈니 라이브 액션 '인어공주'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할리우드 최고의 스튜디오는 압도적으로 디즈니다.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스타워즈와 마블 그리고 20세기 폭스까지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디즈니가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반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워너브러더스의 '루니 툰' 등 후발 주자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월트 디즈니 사후 성인 타겟의 실사영화에 힘을 기울인 것도 그런 이유였다. 1989년 제작된 <인어공주>는 뮤지컬 형식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성인도 즐길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결말도 해피엔딩으로 바꿨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으로 이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당시 데이트 무비로서 최고 인기를 누렸다.

    최근 디즈니는 <알라딘>, <라이온 킹>, <미녀와 야수>, <뮬란> 등 애니메이션으로 성공을 거둔 명작을 실사로 리메이크하고 있다. <알라딘>처럼 대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고, <라이온 킹>과 <뮬란>처럼 아쉬움이 가득한 작품도 있다. 디즈니의 전성기를 다시 불러온 <인어공주>는 반드시 성공해야 할 작품이다. 리메이크는 원작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원작의 설정과 스토리를 재창조한다. 거장인 구스 반 산트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걸작 <사이코>(1960)을 설정과 스토리, 화면구도까지 그대로 반복한 <사이코>(1998)로 리메이크했다가 엄청난 혹평을 받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인어공주>는 애니메이션에서 실사로 만들어지는만큼 더 많은 변화가 필요했다. 배경은 유럽에서 카리브해로 바뀌었고, 왕자의 왕국에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다.

    외화 '인어공주'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외화 '인어공주'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인어공주>의 연출을 맡은 롭 마샬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에서 수상한 뮤지컬 영화 <시카고>(2002)로 유명한 감독이다. 실사영화 <인어공주>에서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한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나 홀릴 정도로, 매혹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피부색이 거슬리지 않는다면, 베일리의 노래가 극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누구나 빠져들 것이다. 울슐라 역의 멜리사 맥카시와 트라이튼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도 멋진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아쉽다.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이미 모두 아는 관객을 사로잡기에는 부족하다. 물고기들의 집단 군무는 아름답고 황홀하지만, 의인화된 캐릭터들의 활약을 실사로 보는 것은 어색하다. 애니메이션의 매력적인 조연들인 세바스찬, 스커틀, 플라운더도 실사로 바꿔놓으니 뭔가 낯설다. <라이온 킹>도 마찬가지였다. 판타지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좋은 이야기이고 설정인 <알라딘>과는 다르다. 명작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만들어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시도 자체는 좋지만, 모든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애니와 다른 실사만의 매력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뮤지컬 장면들의 매력이 없다면, <인어공주>는 익히 알던 이야기의 평범한 반복이다.

    디즈니가 유럽 동화의 주인공을 유색인종으로 바꾼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에 만든 TV영화 <신데렐라>의 신데렐라는 흑인 뮤지션인 브랜디였다. 언제나 디즈니는 가족주의 등 다양한 교훈을 영화와 드라마에 충실하게 반영해왔고, 약삭빠르게 변화를 따라가며 대성공을 거둔 할리우드 스튜디오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미국의 아카데미상, 에미상을 수상하는 지금이라면, 동양인이 인어공주를 연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흑인 배우가 인어공주, 히스패닉 배우가 백설공주 역을 맡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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