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류가 다가오는 가운데 시민들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의 일부 자치구들이 학교 급식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강화하는 조례를 잇따라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부족해 여전히 '방사능 밥상' 걱정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
'방사능 논란' 때마다 등장한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수가 대량 유출됐다. 방사능에 더욱 취약한 아이들의 급식에 오염된 식재료가 올라오지는 않을지 학부모들의 우려도 커졌다.
정부는 2013년 9월 후쿠시마 주변 8개 현(縣)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도 같은 해 각각 '영유아시설 급식의 방사능 안전 식재료 사용 지원에 관한 조례'와 '방사능 등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나섰다.
해당 조례들은 학교 및 영유아시설의 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에 대해 방사능 등 유해물질을 검사하는 내용이다. 방사능 오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지표인 요오드와 세슘 수치가 기준치인 100㏃/㎏ 이하인지 측정한다.
일본 후쿠시마현 오나하마항 어선. 연합뉴스하지만 모든 학교가 반드시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별로 연 1회 이상 전수검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권고하고 있을 뿐,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년 동안 서울시가 직접 시행한 단체급식 식재료 정밀검사는 435건(학교 144건, 어린이집 94건, 공공급식 197건) 뿐이다. 2021년 457건(학교 209건, 어린이집 107건, 공공급식 141건)보다 오히려 줄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22년 학교급식 식재료 방사능 검사를 370건(현장검사 168건, 정밀검사 202건), 2021년에는 267건(현장검사 165건, 정밀검사 102건) 실시했다.
서울시에서 급식을 먹는 학교 수가 2023년 3월을 기준으로 1367개(초등학교 609개, 중학교 390개, 고등학교 320개 등)에 달하고, 매일 한 끼 이상 급식이 나오는 것을 고려했을 때 턱없이 적은 횟수다.
또한 해당 조례들은 학교와 공공 어린이집만 대상이어서 민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대부분 검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자 자치구들도 직접 나섰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13년 12월 동대문구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구로구, 성동구 등 9개 자치구들은 자체적으로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를 만들어 서울시 조례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겠다고 나섰다.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로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다른 자치구들도 조례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양천구는 지난 25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목전에 두고 해당 조례를 제정했고, 송파구와 광진구에서도 조례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주민 발의로 해당 조례를 제정했던 구로구의 경우 예산 1200만 원을 편성해 지난해에만 160건의 식재료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실시했다. 서울시 전체 검사 건수의 3분의 1이 넘는 횟수다.
성동구는 전국 최초로 학교 급식실마다 방사능 측정기를 지원해 학교가 자체 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자치구들의 조례 또한 "급식시설 별로 연 1회 이상 전수조사 또는 표본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방사능 안전 급식' 만들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 必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전문가 시찰단이 지난 24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현장 시찰을 하고 있다. 도쿄전력 제공다만 전문가들은 우후죽순처럼 제정된 자치구 조례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도 이미 조례를 시행 중일 뿐만 아니라, 학교급식 식재료가 학교에 공급되기 이전 생산·유통단계에서 농산물품질관리원이나 보건환경연구원 등의 검사를 거치는 만큼 자치구가 중복해서 하는 검사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권훈정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유통 단계에서 미리 (방사능 오염 여부를) 전부 통제할 수 있는데, 학교별 연 1~2회 전수 검사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자치구가 검사에 쓸 돈을 더 효율적인 곳에 쓸 수 있는데, 예산과 인력 낭비"라고 지적했다.
중앙대학교 하상도 식품공학부 교수 또한 "자치구의 급식안전조례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보여주기식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최근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송파구와 광진구에서 주민들이 발의한 '방사능 안전급식조례'가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19일 송파구의회에서도 해당 조례가 찬성 1표, 반대 6표로 부결됐다. 일부 의원들은 "예산 차원에서, 서울시에서도 검사를 하기 때문에 그 검사를 더 믿고 (강화)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1일 광진구의회에서도 "유통 초기단계에서도 검사가 이루어지는데, 마지막 (소비)단계에서 하는 전수조사가 과연 예산 대비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 "검사시 1.5kg 이상을 수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전수조사라는 것이 실제로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지적과 함께 해당 조례가 반려됐다.
후쿠시마현의 오나하마항 수산물 시장의 광어와 오징어. 연합뉴스그렇다고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 전문가들은 범국민적인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보여주기식' 조례보다 학교급식을 '방사능 안전지대'로 만들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농축수산물 수입·생산 등 초기 단계부터 정부가 제대로 방사능을 검출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안재훈 활동처장은 "자치구 단위의 방사능 검사는 국가 단위 검사에 쓰이는 장비처럼 고급 장비를 쓰지 못해 미량의 방사능을 검출해내지 못할 수 있다"면서 "국가 단위에서 인력과 장비를 확충해 방사능 스크리닝을 더 제대로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 교수도 "원산지 표시를 더욱더 철저히 하거나 일본산에 대한 수입 또는 사용 금지 조례를 만드는 등 보다 더 효율적이고 실익이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검사의 문턱이 되는 방사능 기준값부터 낮춰서 더 꼼꼼히 검사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지적도 나온다.
환경교사모임 신경준 공동대표는 "우리나라는 방사능 오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지표인 요오드와 세슘 수치가 기준치인 100㏃/㎏ 이하만 되면 통과되는데, 독일의 경우 어린이는 4㏃/㎏, 성인은 8㏃/㎏ 이하가 되어야 한다"면서 "국가별로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방사능 기준값이 너무 높다"고 꼬집었다.
모든 학교들이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식재료를 납품받도록 급식 식재료 유통체계를 일원화하자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배신정 송파구의원은 "현재 일부 학교들은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친환경유통센터에서 식재료를 유통받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다"면서 "모든 학교들이 식재료 정밀검사를 진행하는 친환경유통센터에서 식재료를 유통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