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3년 전 북한이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건과 관련해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14일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남북연락사무소 불법 폭파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소송 원고가 대한민국이고 피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다만 이런 소송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한을 비(非)법인 사단(社團)으로 전제해 불법 행위를 추궁하는 소송을 낸 것이라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남북의 역사에서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지난 2020년 6월 16일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남북연락사무소를 불법 폭파한 바 있다. 폭파과정에서 연락사무소 인근의 종합지원 센터도 못쓸 정도로 허물어졌다.
이에 정부가 청구한 금액이 남북연락사무소 약 102억 5천만 원과 종합지원센터 344억 5천만 원을 합친 447억 원이다.
정부가 이 시점에서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와 관련이 있다. 사건 발생 3년이 지나면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가 소멸되기 때문에 만 3년이 되는 16일을 앞두고 "국가채권을 보존"하기 위해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것이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유가족이나 단체가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등을 상대로 소송을 건 사례는 있지만, 정부가 직접 소송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소송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통일부는 "북한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법률적으로 명백한 불법행위이고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등 남북 간 합의를 위반한 것이며, 남북 간에 상호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앞으로 정부는 관계부처 협력 하에 소송을 진행해 나갈 것이며, 북한의 우리 정부 및 우리 국민의 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고, 원칙 있는 통일·대북정책을 통해 상호존중과 신뢰에 기반 한 남북관계를 정립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나 국민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단호한 대응, 원칙 있는 통일대북정책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소송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얘기이지만, 이런 조치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먼저 북한이 정부의 소송에 응할 리 없다. 따라서 소송은 공시송달(주소 불명 등 서류를 송달할 방법이 없을 경우 일정 기간 법원에서 보관한 뒤 송달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로 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부가 소송에서 승소하겠지만, 북한에 손해배상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가 문제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앞으로 법무부 등 유관부서와 협의해서 가능한 강제집행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손해배상 청구시효 중단을 통한 권리보전을 선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손해배상 청구시효를 일단 중지시킨 뒤 앞으로 강제집행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는 얘기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강제집행 방안을 강구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유사한 사례로 따지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을 대상으로 한 추심금 청구소송 결과도 함께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군포로 및 납북자 유가족들은 지난 2020년과 2021년 북한 당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한데 이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북한에 보낼 저작권료로 법원에 공탁중인 18억 원으로 대신 내라는 추심금 청구소송을 냈으나 기각됐고 현재는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들 유가족들이 추심금 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한다면 같은 논리로 앞으로 북한의 가상자산 등을 압류해 연락사무소의 손해액을 추심하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