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일명 '노란봉투법'을 두고 여야 갈등이 첨예했습니다.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조의 배상책임이 과도해지는 걸 막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인데요. 여권은 불법파업을 조장할 것이라고 법안 통과를 막고 있었죠.
그런데 오늘 대법원이 조합원 개인에게 '파업 손해'를 무분별하게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노란봉투법의 취지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법조팀 김승모 기자 연결해 자세히 듣도록 하겠습니다.
김 기자, 무슨 사건에서 이런 선고가 나온 건가요.
[기자]
현대자동차가 노동조합 노조원을 상대로 파업 손해를 배상하라고 낸 소송이었는데요. 총 5건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오늘 모두 선고했습니다.
[앵커]
대법원 판단이 노란봉투법 주요 내용과 비슷한 취지라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5건의 사건 중에서 현대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20억원을 물어내라고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그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이 잘못됐다,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는데요. 이유는 조합원 개인의 손해배상 책임을, 파업을 주도한 노동조합과 같은 수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앵커]
쟁의행위를 주도한 노조와, 거기에 참여한 노조원의 책임을 같게 보는 건 부당하다.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온 건지, 사건의 내용을 한 번 짚어주세요.
[기자]
이 조합원들은 지난 2010년 11월 15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했는데요, 회사에서는 278시간가량 공정이 중단돼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난 2010년 11월 17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울산 3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 관리직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1, 2심에서는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2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는데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정도를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에 참여한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책임을 명확히 따져서 과도한 손해배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거네요. 노란봉투법 취지와 비슷한데, 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한 배경 뭐라고 설명했나요?
[기자]
한마디로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책임범위를 같게 보는 건 노동자 권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노조원 개인을 상대로 이런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많아진다면, 노조 가입을 꺼릴 수밖에 없겠죠.
어려운 말로 하면 헌법상 노동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건데요. 대법원은 또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념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습니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에서 '손해의 배상의무자별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번 판결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대법원. 박종민 기자[앵커]
그럼 오늘 대법원 선고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기자]
네 노란봉투법은 국회 본회의 직회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번 대법원 판결 취지가 노조의 의사결정이나 실행 행위에 관여한 정도 등은 조합원마다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공동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 만큼 노란봉투법 입법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오늘 선고에서 공장 가동이 멈췄을 때 고정비용을 손해로 볼 수 있느냐. 이 부분에 대한 판단도 새로 나왔나요?
[기자]
법원은 그동안 통상 파업으로 공장이 멈추면 공과금, 보험료 등 고정비용을 '생산 감소가 매출 감소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전제로 손해액에 포함했습니다.
불황이나 제품의 하자 등 특별한 경우에만 매출이 감소하지 않은 이유로 인정했는데 오늘 대법원은 '매출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 간접적으로라도 증명된다면 업체의 고정비용을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에 넣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앵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오늘 대법원 판단의 후폭풍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