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삼성의 경기. LG 마무리 백승현이 9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해 최고의 클로저도 쓸 수 없다. 대체 마무리도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LG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뒷문을 단단히 잠글 투수가 있었다.
내야수 출신 우완 백승현(28)이다. 투수 전향 3년 차에 감격의 첫 세이브를 올리며 LG 마운드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백승현은 지난 1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 리그' 삼성과 홈 경기에서 9회초 등판했다. 3 대 2로 불안하게 앞선 가운데 1사 만루의 위기였다. 안타 1개면 동점 혹은 역전을 허용할 수 있었다.
이날 LG는 좌완 선발 이상영의 4이닝 2실점에 이어 필승조를 가동했다. 5회부터 유영찬-정우영-김진성-박명근이 8회까지 1이닝씩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9회초가 문제였다. 좌완 함덕주가 나섰지만 볼넷과 1루수 오스틴 딘의 실책 등으로 무사 1, 2루에 몰렸다. 함덕주는 상대 희생 번트에 포수 박동원의 신호를 받아 과감한 3루 송구로 한숨을 돌렸지만 볼넷을 다시 허용해 1사 만루를 자초했다.
LG는 마무리 고우석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날 등판해 세이브를 따낸 고우석은 부상 여파로 아직 연투가 불가능했다. 경기 전 염경엽 LG 감독도 "오늘은 고우석이 나오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LG는 함덕주를 내리고 백승현을 올렸다. 상대 4, 5번 타자 강민호, 김동엽이 우타자임을 고려한 승부수.
백승현은 벤치의 기대에 한껏 부응했다. 위력적인 슬라이더를 연속 구사하며 베테랑 강민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데 이어 김동엽을 유격수 직선타로 처리해 경기를 끝냈다. 염 감독은 "마지막 정말 터프한 상황에서 백승현이 잘 막아주었고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면서 "승현이의 첫세이브를 축하한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14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LG가 3-2로 승리하자 백승현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위기 상황 등판 부담에 대해 백승현은 "무조건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라 긴장감을 느낄 틈도 없었다"고 돌아봤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김동엽의 직선타는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지만 정타였고, 빠졌다면 역전을 허용할 뻔했다. 백승현은 "박동원 형이 직구를 주문했지만 슬라이더에 자신이 있어 던졌는데 아찔했다"면서 "다행히 오지환 형이 잘 막아줬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애 첫 세이브다. 백승현은 "투수로 전향한 뒤엔 한 번쯤 세이브를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렇게 팀 승리를 지켜 매우 기쁘다"고 미소를 지었다.
백승현은 내야수로 뛰다 지난 2021년 투수로 변신했다. 2020년 호주 프로야구 질롱 코리아에서 뛰던 백승현은 우연히 마운드에 올라 시속 153km의 강속구를 뿌렸다. 주위의 권유에 고민하다 포지션 변경을 결정했다. 백승현은 "오랜 기간 야수로 뛰었지만 타격과 수비에서 큰 한계를 느꼈다"면서 "그래도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투수로 도전했다"고 돌아봤다.
2021년 16경기 1홀드 평균자책점(ERA) 2.16을 기록한 백승현은 지난해는 12경기 1패 1홀드 ERA 10.80에 머물렀다. 2021시즌 뒤 팔꿈치 뼛조각 수술을 받은 여파였다. 절치부심한 백승현은 올해 염 감독의 눈에 들어 가장 중요한 순간 팀을 구해냈다. 백승현은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운동량을 크게 늘렸다"면서 "아울러 주 무기인 슬라이더의 위력을 극대화하겠다는 목표로 훈련했다"고 강조했다.
14일 삼성과 홈 경기에서 생애 첫 세이브를 따낸 LG 백승현이 취재진과 인터뷰 뒤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 노컷뉴스공교롭게도 롤 모델인 고우석이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이브를 올렸다. 백승현은 "팀에서 가장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고우석을 본받아 평소 많은 것들을 물어본다"면서 "다행히 오늘 세이브를 올렸지만 우석이를 비롯해 모든 투수진과 동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공을 돌렸다.
고우석은 지난 9일 한화와 원정에서 끝내기 폭투로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이날 백승현도 강민호와 김동엽을 상대로 바운드되는 공을 잇따라 던지며 아찔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박동원의 블로킹에 위기를 넘겼고, 세이브를 따냈다. 고우석처럼 위기에서 실점하는 폭투는 하지 않았다는 말에 백승현은 "동원이 형이 다행히 잘 막아줬다"고 말했다.
백승현은 "투수 전향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면서 "앞으로도 팀 승리를 많이 지켜내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백승현은 15일도 등판해 팀이 크게 앞선 상황이었지만 1이닝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내 승리에 힘을 보탰다. 백승현의 활약 속에 LG는 15일 1위를 탈환하며 1994년 이후 29년 만의 우승에 대한 의지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