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7일 세종시 도담동 아이누리 어린이집을 방문,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할머니 프로그램을 참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저출생 극복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제시하면서 보육과 결혼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공감보다는 논란이 더 큰 모양새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저출산 극복 정책…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과 결혼 시 증여세 공제한도 상향
정부는 지난 4일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핵심 분야 중 하나로 미래대비 기반 확충을 꼽았다.
그 중 첫 번째 과제로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언급하며 인구정책 추진체계의 통합과 저출생 대책들을 제시했다.
정부가 저출산 대응노력 확충이라며 제시한 정책들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시행과 육아휴직 시 대체인력과 인센티브 확대, 혼인 시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한도 확대 등을 검토하는 한편 양육비 비과세 한도와 자녀장려금을 늘리는 등 세제혜택 확대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외국인 가사도우미의 경우에는 우선 시범사업으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할 수 있는 비전문취업 비자, 이른바 E-9비자의 가사서비스 인증기관 취업을 허용하고,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내년 중 확대 여부 등을 판단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육아휴직 시 대체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용이해지도록 민간대체인력뱅크 운영기관을 현재 3개소에서 더 늘리고, 부모가 공동육아에 나서는 경우에 대한 인센티브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결혼할 경우 부모로부터 증여받는 금액에 대한 증여세 공제한도를 높이는 정책도 검토 중이다.
기존에는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경우 10년 이내의 기간 동안 5천만원까지가 공제한도여서 부부 합산 1억원까지가 비과세였는데, 이를 각자 1억5천만원, 부부 합산 3억원까지로 높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결혼·출산 인센티브 빨리 만들어야" 강조했지만 여전한 실효성 논란…"비웃음 유발할 대책" 비판도
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설명하는 방기선 기재부 1차관. 연합뉴스이같은 정책 방향 제시에 대해 기획재정부 방기선 제1차관은 "제가 태어난 시점에는 한 해 100만명이 태어났는데 최근에는 25만명 정도로 줄었다"며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센티브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 0.81명으로 모두 최저기록을 계속해서 갈아치우고 있는 상황인 만큼 결혼과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어떤 정책이라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하지만 문제는 이같은 정책들이 실제 저출생 극복에 힘을 보태기 보다는 화제를 모으는 데만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결혼하는 자녀에 대한 증여세 공제한도를 높이는 방안의 경우 공제금액 만큼을 지원해주지 못하는 가족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억5천만원을 자녀 손에 쥐어주지 못하는 부모와 그 자녀에게는 '흙수저 차별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실효성 여부도 미지수다. 이미 결혼을 한 부부 다수가 부모로부터 지원받는 돈을 세세하게 신고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세수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공제를 높이는 것이 세부담을 줄이는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녀에 대한 현금증여 부담만 줄여줌으로써 부의 대물림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충남대 정세은 경제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양극화가 심해져서 청년들이 자기 한 몸의 미래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부모로부터 받는 돈에 대한 증여세를 깎아주겠다고 제시한 것은 현재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며 "저출산 극복 대책으로 상당히 부족한 것은 물론 비웃음을 유발할 그런 대책"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적절한 급여 수준, 싱가포르 등 이미 도입하고 있는 국가에서 인권이나 노동권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는 점, 국내외 찬반 논란 등을 감안했을 때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의 필요성이 산업 전반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달리 가사도우미에만 집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 "정답은 일가정 양립…인센티브 제공 대신 결혼하고 아이 낳을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스마트이미지 제공전문가들은 정부가 저출산·저출생 문제 극복에 대한 조급함을 버리고 보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혼을 하고 싶고, 아이를 낳고 싶도록 경제적·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인센티브나 일시적 혜택 등으로 유도를 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결혼 시 증여세 공제한도 상향, 양육비 비과세 한도 상향, 자녀장려금 상향 등 각종 세제 혜택 제공 방안도 기재부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아동의 상대적 빈곤율은 10.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2.7%)보다 낮고 세계 최고 복지국가로 꼽히는 스웨덴(9.0%)과 비슷할 정도로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이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을 보이는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정세은 교수는 "출산 장려금 수백만원씩 줘도 아이를 낳지 않는 지역이 있는데 아이를 낳는 것을 결정할 때 출산 시기나 그 이후 일이 년 만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인센티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뭔가를 쓸 수 있고 줄 수 있는, 다시 말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회에 만연한 저출산 현상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식보다는 근무형태 개선 등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방안들이 보다 늘어나고 심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했던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제시된 방안이 바람직한 사례로 거론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적용 대상 아동 연령을 현행 만 8세 이하 12세 이하로 확대하고, 기간도 부모 1인당 기존 최장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며, 통상임금의 100%를 지원하는 단축 시간 급여도 하루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서울여대 정재훈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저출산 대응이라는 것이 100만 가지 답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아이를 낳은 부모들의 일가정 양립이 돼야만 그 부모들도 양육을 할 수 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미혼 청년들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영유아기까지는 사회적 돌봄체계가 완성이 됐기 때문에 초등 돌봄과 가족친화적 기업 문화 조성 등 선진국의 트렌드를 따라간다면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차원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