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자정 무렵, A건설업체 상무 B씨가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공사현장 2층 난간에 올라섰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10m 높이의 철골 구조물 위에 밧줄 하나만 붙잡고 위태로이 서있던 B씨는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았다.
섰다가 드러눕기를 반복하는 B씨를 구하기 위해 결국 경찰특공대까지 투입됐다. 바닥에는 에어매트도 여러 장이 깔렸다.
한바탕 투신 소동을 벌인 B씨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서울 송파경찰서는 B씨를 건조물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B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투신소동에 임금체불까지…1조 원대 국책사업 공사현장에 무슨 일이?
가락시장. 연합뉴스 B씨가 벌인 소동의 시발점은 바로 서울 동남권 최대 농수산물 도매 시장인 '가락시장 현대화사업'. 사업비가 1조 원이 넘는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가 발주한 사업이다. 이 가운데 A사는 가락시장 채소2동의 신축공사에서 일을 맡았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레미콘 수급에 차질이 생기는 등 각종 악재가 겹쳐 공사가 지연되기 시작했다. 늘어난 공사기간에 공사대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지난 2월부터 원청 시공사인 C사가 하청업체 A사에 관련 공사대금(기성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본격화됐다. 5월까지 약 4개월 간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A사는 지난달 초, 유치권을 행사하고 나섰다.
공사장 입구를 틀어막고 공사대금을 달라고 항의하는 A사에 C사도 용역업체까지 동원해 맞섰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고, 서로 고소·고발이 난무한 끝에 B씨의 투신 소동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날벼락을 맞은 이들은, 연초부터 임금이 밀리다 끝내 일자리까지 잃은 노동자들이다. A사에 고용됐던 100여 명의 건설 노동자들은 지난 2월부터 4개월 간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 D씨는 "말도 못한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 큰 타격인데 (원,하청이) 서로 떠넘기는 식으로 하고 있다"면서 "매달 나가는 돈이 있는데 월급이 안 들어오니까, 다른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애가 탄다고 토로했다.
공사대금 '진실공방'…원청 "하청, 과한 요구" vs 하청 "정당한 요구"
노동자들의 항의 끝에 원청인 C사가 지난 2, 3월분 임금은 대위변제했지만, 4, 5월분 임금은 여전히 지급되지 않고 있다.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은 노동청에 진정까지 넣었다.
하지만 '공사 대금'을 둘러싼 업체 간 대립이 풀리지 않아 사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공사대금 갈등으로 인해 중단됐다 재개되길 반복하던 공사는 지난달 말 겨우 재개됐지만, C사는 결국 A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공정율은 60% 수준이라 당초 올해 10월 완공 예정이었던 공사가 제때 끝날 지도 미지수다.
문제의 공사 대금을 두고 원하청 간의 말은 아직도 엇갈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계약 해지 후) A사가 C사에 약 70억 원의 공사 대금을 요구했다"면서 "C사는 20억 원을 제시했고, A사가 이를 거부하면서 여전히 공사 대금은 미지급 상태"고 설명했다.
A사는 "우리가 해당 공사에 7~80억 원을 썼고, 영수증과 모든 서류를 (C사에) 다 제출했다"면서 "더구나 C사 때문에 공사가 지연되면서 우리는 30억 원 이상 손실을 봤다"고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C사는 "(A사가) 일을 50%을 했는데 70%, 80%을 달라고 하니, 분쟁이 발생해 공사 대금 지급이 조금 지연된 것"이라면서 "70억 원대의 상도덕에 어긋나는 금액, 원래 지급해야 하는 것 이상의 금액을 요구해서 주지 못한 것이지, 금액이 타당하다면 우리도 줬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발주처인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는 "(하청업체와) 직접 계약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개입하기는 곤란한 상황"이라며 답변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