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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친구야. 건강하세요 은사님" 타임캡슐이 전한 20년 전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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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다 친구야. 건강하세요 은사님" 타임캡슐이 전한 20년 전 추억

    19일 인천 선학초 타임캡슐 개봉식
    20년 만에 열린 타임캡슐…물에 젖은 편지에 발 '동동'
    스승·동창생들 옛 추억 속으로…변한 모습에 '눈시울'
    "20년 전 목표 확인한 하루…새출발 계기 되길"

    19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선학초등학교에서 20년 전 이 학교 운동장에 묻었던 타임캡슐 개봉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19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선학초등학교에서 20년 전 이 학교 운동장에 묻었던 타임캡슐 개봉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타임캡슐을 뜯어서 저에게 쓴 편지도 읽고 그때 같이 묻었던 핸드폰도 확인하고 싶었는데 볼 수 없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은사님들과 선후배들을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9일 인천 연수구 선학초등학교에서 열린 '타임캡슐 개봉식'에 참석한 이 학교 졸업생 황은수(31)씨는 20년 만에 마주한 타임캡슐이 기대와 달리 훼손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20년 전 이 타임캡슐에 '휴대전화'를 묻었다.
     
    앞서 20년 전인 2003년 7월 19일 이 학교 학생 1983명과 교직원 70명 등 2053명은 지름 70㎝, 높이 1m짜리 붉은색 플라스틱 통 4개에 담긴 타임캡슐을 교정에 묻었다. 타임캡슐 안에는 이들이 작성한 '20년 뒤 나에게 쓰는 편지'와 '가장 아끼는 물건', 가족사진 등이 담겼다.
     
    인천의 학교에서 타임캡슐을 봉인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3차례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학생과 교직원 전체가 타임캡슐을 묻은 건 선학초가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개봉식에 지역사회의 관심이 컸다.

    19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선학초등학교에서 20년 전 이 학교 운동장에 묻었던 타임캡슐 개봉식에서 나온 편지들. 연합뉴스19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선학초등학교에서 20년 전 이 학교 운동장에 묻었던 타임캡슐 개봉식에서 나온 편지들. 연합뉴스 

    20년 만에 열린 타임캡슐…물에 젖은 편지에 발 동동


    그러나 20년 만에 마주한 타임캡슐은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플라스틱 통 안에는 물이 들어차 물건과 편지 대부분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 이날 타임캡슐 개봉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졸업생과 전직 교직원 등 200여명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당시 타임캡슐 봉안을 추진했던 이명수(76) 전 선학초 교장은 "비닐을 여러 겹으로 싸고 실리콘으로도 밀봉했는데 통에 물이 들어가 버렸다"며 "묻을 때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받고 한 것인데 이렇게 돼 죄송한 마음"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일부 졸업생은 아쉬운 마음에 타임캡슐 속 물에 젖은 편지들을 일일이 펼쳐보며 자신의 편지를 찾기도 했다. 편지에는 '착한 모습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거나 '의사가 되고 싶다' 등 20년 전 꿈나무들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2003년 7월 19일 인천 선학초등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타임캡슐을 묻기 전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 속 정장을 입은 사람이 이명수 전 선학초등학교 교장. 연합뉴스2003년 7월 19일 인천 선학초등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타임캡슐을 묻기 전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 속 정장을 입은 사람이 이명수 전 선학초등학교 교장. 연합뉴스

    스승·동창생들 옛 추억 속으로…변한 모습에 '울컥'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이 학교 졸업생과 당시 교직원들은 20년 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아련한 옛 추억을 주고 받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옛 교직원들은 늠름하게 자란 제자들을 보며 그들의 앞날을 축복했고, 어릴 땐 크게 보였지만 이제는 늙은 은사의 모습을 본 제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찾은 졸업생 유보영(31·여)씨는 "20년 전에 나에게 어떤 편지를 썼는지 궁금해 회사에서 반차를 쓰고 왔다"며 "당시 가장 아끼는 물건으로 500원을 넣었다. 그땐 그게 꽤 큰 돈이었다"고 회고했다.
     
    유씨의 어머니 이화신(62)씨는 "앞서 여러 매체에서 개봉식을 알리는 기사를 냈는데 기사에 첨부된 자료사진에 내 모습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딸과 함께 추억에 잠겼다"며 "당시 학부모회 임원이어서 사진에 찍혔던 것 같은데 이 학교 졸업생은 아니지만 자녀 셋 모두 이 학교를 졸업해 10년 가까이 이 학교와 인연을 맺어 졸업생과 같은 마음으로 학교에 왔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선학초등학교에서 열린 타임캡슐 개봉식에서 20년 전 이 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직원들이 학생들에게 소감을 말하는 모습. 주영민 기자19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선학초등학교에서 열린 타임캡슐 개봉식에서 20년 전 이 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직원들이 학생들에게 소감을 말하는 모습. 주영민 기자 

    "20년 전 목표 확인한 하루…새출발 계기 되길"


    선학초는 학교 대강당에 졸업생과 교사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아쉬움을 달랬다. 현직에 있는 한 교사는 20년 전 선학초에서 담임을 맡았을 당시 학급 학생들의 이름을 적은 출석부를 가져와 한명씩 이름을 부르며 제자들과 재회하기도 했다.
     
    선학초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맹일학(79)씨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울컥하다"며 "교직생활을 한 보람을 느낀 하루였다"고 회고했다.
     
    2003년 당시 선학초 6학년 담임교사였던 장영진(78)씨 역시 "20년 동안 늙어가는 사람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는데 자라나는 사람들은 못 알아볼 만큼 변한다는 걸 실감했다"며 "부모가 몸으로 아이를 낳는다면 교사는 제자들을 마음으로 낳는다. 제자들이 앞으로도 건강하고 더 잘 됐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이명옥 현 선학초 교장은 "타임캡슐에는 20년 전 학생들의 소망과 목표가 담겨 있을 것"이라며 "오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음을 자부하고, 새로운 소망과 목표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짐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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