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규 기자2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 지하차도 침수 참사와 관련한 경찰 수사에 이목이 쏠린다.
경찰은 참사를 불러온 단초가 무엇인지부터 지하차도의 구조적 실태, 행정기관의 대응까지 사고 전반에 대해 면밀히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 수사는 이 사고를 '천재지변'으로 치부하거나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행정기관을 정조준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호강 범람' 원인 제공…무너진 제방 제구실했나
미호강 수위는 지난 13일부터 연일 쏟아진 엄청난 폭우에 급격히 높아졌다. 13~16일 나흘 동안 청주지역 강수량은 무려 470㎜가 넘는다.
미호강이 범람한 때는 15일 오전 7시 58분쯤으로, 인근 교량 공사 과정에서 쌓은 임시 제방도 함께 무너졌다. 공사 현장은 참사가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와 불과 400여m 떨어진 곳이다.
범람을 넘어 임시 제방까지 무너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은 지대가 낮은 궁평2지하차도로 한꺼번에 쏠렸다. 오전 8시 40분 침수되기 시작한 지 불과 4분만에 지하차도가 모두 잠길 정도였다.
제방은 범람을 방지하기 위한 토목 구조물이다. 무너지면 안 되는 절대 안전 시설물이다. 하지만 이 제방은 하천 범람과 거의 동시에 힘없이 무너졌다. '임시' 제방인 탓이다.
문제는 설계다. 임시 제방 높이는 29.7m로, 허물기 전 기존 제방(31.3m)보다 1.6m 낮게 시공됐다. 행복청은 계획홍수위(2014년 28.78m)보다 0.96m 높게 설계했다는 입장이지만, 2018년 기준 미호천교 홍수위는 29.02m다. 설계 기준을 2014년으로 설정한 게 적절한 것인지를 따져볼 대목이다.
설계대로 건설됐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적지 않다. 15일 오전 7시 10분 미호천교 수위는 29.63m로, 계획홍수위를 이미 넘어섰다. 범람이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임시 제방(29.74m)까지는 10㎝가량 여유가 있었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임시 제방의 실제 높이가 설계보다 낮거나, 부실시공됐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행복청이 기존 제방을 허가 없이 헐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미호천교 교량 공사 전반에 대한 진단이 불가피해 보인다.
궁평2지하차도 설계도. 한국철도시설공단 제공
경찰, 지하차도 설계 뜯어본다…합동감식서 3D스캔 적용
궁평2지하차도는 총길이 680m에 터널의 길이는 430m, 높이는 4.5m다. 침수 당시 6만t의 물이 터널을 가득 메우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분이다.
경찰은 2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함께 유관기관 합동 감식에 나서 3D스태너를 활용한 지하차도 전반을 재구성한다.
경찰은 먼저 3D스캐너를 지하차도 안쪽에 설치해 정확한 공간을 측정한 뒤 실제 설계 도면과 대조해 시공이 제대로 됐는지부터 살핀다.
지하차도 내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됐는지도 관건이다. 지하차도 내부에는 분당 3t의 물을 빼낼 수 있는 배수펌프가 4개 설치돼 있다. 시간당 최대 83㎜의 물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침수 당시 이 배수펌프는 작동하지 않았다. 물이 차오르면서 전기를 공급하는 배전반이 고장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배전반은 외부에 있다. 지하차도 안보다 배전반이 먼저 침수돼 작동을 멈췄기 때문에 결국 배수펌프도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침수에 대비한 배전반 방수 처리나 물막이 공사 여부도 짚어볼 대목이다.
경찰은 배전반이 고장나기 전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작동했다면 빼낸 물의 양이 얼마나 됐는지 등을 분석할 방침이다.
도로 경사 역시 감식 대상이다. 궁평2지하차도로 진입하기 전부터 내리막 경사가 상당 거리 이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설계대로 경사도를 맞춰 시공했는지를 살핀다.
최범규 기자
천재지변을 어쩌라고…"독박 쓸라" 행정기관 또 책임 떠넘기기
충청북도와 청주시, 행복청 등 이번 참사와 관련한 행정기관은 모두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부실한 대응의 정황은 곳곳에서 나온다.
참사가 벌어지기까지 이미 수 시간 전부터 징후는 나타났다. 사고 당일인 지난 15일 오전 4시 10분쯤 금강홍수통제소는 미호천교 지점에 '홍수경보'를 내렸다. 사고 발생 4시간 30분 전이다.
오전 6시 30분쯤에는 흥덕구청 건설과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민대피와 통제까지 요청했다. 이 내용은 청주시청에만 공유됐을 뿐 도로 관리 주체인 충청북도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청주시는 '내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놨다.
그렇다고 충청북도가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충청북도는 오전 6시 31분, 7시 2분, 7시 58분 잇따라 행복청으로부터 미호강 범람 위험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지하차도를 담당하는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전파는커녕 상부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데도 충청북도는 미호강 임시 제방 붕괴만 아니었으면 무탈했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만 견지하고 있다.
최범규 기자
엉뚱한 곳 찾아가고 대응도 부실했고…경찰 책임론도
경찰의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행복청 공사 감리단장은 임시 제방에 붕괴되기 시작한 오전 7시 58분 "궁평지하차도를 통제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112 신고를 했고, 이에 경찰은 궁평1지하차도로 향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궁평지하차도'를 주로 궁평1지하차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는 궁평2지하차도에서 났다.
내부 보고나 교통경찰 지원 요청에 대한 허술한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19일 충북경찰청에서 진행한 감찰에서 사고지역 관할서인 청주흥덕서를 상대로 부실한 대응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특히 오송파출소 인력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교통경찰 등 인력 지원 요청이 없었던 부분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 강내면 탑연삼거리가 침수됐다는 사실을 경찰서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추궁을 이어갔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도 관심사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이나 교통수단의 관리 결함 등 관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이다. 아직까지 이 규정으로 처벌받은 단체장은 없다.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이상래 행복청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