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경찰이 부른 호송 차량에 탑승하다가 급격한 경사로 인해 뒤로 넘어졌다. 해당 차량에 놓인 경사로는 약 30°로 휠체어를 탄 채 오르기에는 가팔랐다. 비마이너 영상 캡처 후 재가공경찰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를 체포해 호송 차량에 태우려다 박 대표의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알고보니 경찰이 장애인 호송에 대한 전문 장비는커녕, 관련 메뉴얼조차 없어 장애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장애인 호송 전문 차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호송할 때 사용할 장비에 대한 구체적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버스 탑승 시위'를 벌이던 박 대표를 업무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해 남대문경찰서로 이송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표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등으로 안전하게 이동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경찰은 사설 업체를 불러 휠체어를 집어넣을 공간이 있는 2열 시트를 탈거한 스타렉스 차량에 태워 호송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서울시 장애인 전용 차량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마냥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사설 장애인 전용 차량을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섭외한 해당 차량은 장애인 전용 차량이 아니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스스로 탑승하기에는 임시로 덧댄 경사로가 지나치게 가팔랐다. 결국 경사로 위에서 박 대표의 휠체어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휠체어 사용자가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의 기울기는 1/18(3.2°) 이하, 불가피한 경우 1/12(4.8°) 이하로 해야 한다. 그러나 경찰이 섭외한 차량에 설치된 경사로 각도는 약 30°에 달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최현정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는 사법기관의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며 "사법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는 것은 장애인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차량에 탑승한 후에도 휠체어를 고정할 수 있는 안전띠가 없어 박 대표가 사과를 요구하며 하차를 거부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최 변호사는 "탑승 후에도 진행 방향 정면이 아닌 측면을 보고 이동해야 했다"며 "차 내부에 휠체어 고정장치나 안전벨트가 없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휠체어를 양옆의 경찰관이 직접 잡고 경찰서까지 이동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의 '특별교통수단 휠체어 고정설비의 안전기준'을 살펴보면, 장애인이 휠체어에 탄 채로 차량 내에 탑승할 경우 자동차 내에서 휠체어를 안전하게 고정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돼 있어야 한다. 또 휠체어가 자동차 앞쪽 방향으로 착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최 변호사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안전하게 호송해야 하는데, 장애인 피의자를 호송할 수 있는 차량을 경찰이 가지고 있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최소한 장애인콜택시 등 장애인 전용 교통수단 제도라도 이용해 안전하게 호송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경찰이 이와 관련한 장비를 갖추기는커녕, 아예 장애인을 어떻게 호송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경찰청은 앞서 '장애인 피의자 호송' 관련 일선 경찰서의 문의를 받았음에도 별도 매뉴얼이 없다고 답변했을 뿐, 관련 지침 마련에는 나서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올해 초쯤 일선 경찰서 문의로 살펴본 결과 장애인 호송 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한 사례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장애인 전용 경찰 장비는 별도로 없다"며 "장애인과 관련해 구체적 매뉴얼 형식으로 상세하게 돼 있는 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간 장애인 체포 자체가 드물었고, 최근에 (집회·시위 중 장애인 현행범 체포 문제가) 불거져서 (장애인 호송 문제를)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 지난해 12월 장애인의 집회·시위 시 장애인 안전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며 경찰청에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한 바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장애인 교육권 완전 보장을 위한 집회·시위 도중 경찰과 대립하면서 박 대표가 휠체어를 탄 채 뒤로 넘어진 바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경찰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박 대표 등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인권위는 "특히 장애인의 집회·시위 등은 사고 발생 시 부상 위험이 커지는 등 신체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으므로 공권력 사용에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