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왼쪽)과 박보균 문화체육부 장관. 연합뉴스대한출판문화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 카르텔' 발언과 출판정책 파행을 비판하며 박보균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자 문체부가 "출협 회장은 사태 왜곡과 책임 회피가 아닌 정당한 감사를 받으라"며 충돌했다.
박보균 장관이 24일 'K-북, K-출판 재도약 실천의 진행상황 및 계획' 기자간담회를 갖고 '서울국제도서전'의 수익금 내역을 지난 5년간 누락했다며 "한심한 탈선 행태" "치명적인 도덕적 재정적 탈선" 여부를 감사 중이라고 밝히자 출협이 이에 반박하며 날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출협은 이날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에서 보여지는 무능한 상황인식, 정책 결정에서 당사자인 출판인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그런 태도 또한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다"며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이 무능하고 시대에 뒤처지고, 대결적 사고에 빠진 박보균 장관을 하루빨리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2023 서울국제도서전. 김민수 기자 2023 서울국제도서전. 김민수 기자 박보균 "탈선·카르텔" 비난…출협 "출판인 무시, 무능장관" 비판
박 장관이 의혹을 제기한 부분에 대해 출협은 "2018~2019년에는 도서전 수익금 상세 내역 제출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문체부가 원하는 바에 따라, 공개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해왔다"고 반박했다.
박 장관이 언급한 '서울국제도서전의 초과 이익 국고 반납 의무'에 대해서도 출협은 "도서전은 국가행사가 아닌 민간행사다. 초과 이익 국고 반납 의무는 법에 있지 않는 내용으로, 문체부가 부과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수익금 상세 내역' 역시 보조금법이나 국고보조금 운영관리지침, 기재부의 보조사업 정산보고서 작성지침 그 어디에서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은데도 법 위반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서울국제도서전 국고보조금은 7억7천만원(문체부는 10억원 안팎이라 설명) 정도"라며 "출협 자부담, 도서전 참가사 참가비 등 전체 40억원 정도 비용이 소요되는 연례 국제 행사"라며 "문체부와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승인 없이 정산을 마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주 문체부 감사실의 출협 방문 감사 당시에도 관련된 모든 통장을 공개했다고도 했다.
출협은 올 상반기 박 장관이 '세종도서' 선정 사업을 두고 공정성 문제를 들고 나왔다며 도서관 구입예산이 부족해 그 보완책으로 우수도서 선정과 출판지원의 명목으로 시행되고 있는 세종도서 선정에 대해 공정성을 바로잡는다는 얘기는 현재 출판 현안에 있어 문제의 핵심도 원인도 대책도 전혀 잘못 짚고 있는 한심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학술원 우수도서구입예산으로 책정돼 있던 60억 원은 몇 년에 걸쳐 반 토막 나 있는 상황이었고, 박 장관 발언 이후 출판인들이 주목하지 않은 사이 문학 나눔 도서 선정 사업 64억 원은 전액 삭감이 예정돼 있다"며 "세종도서 얘기를 꺼냈다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박보균 장관은 그 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한국문학번역원의 감사에 들어갔다"고 꼬집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24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열린 K-북 비전 관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준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출판진흥원 제공 김 장관 "이권 카르텔"…김준희 출판진흥원장 '할많하않' 사표
문체부 산하기관으로 서울국제도서전 사업을 감독해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두고도 박 장관은 "출협과의 묵시적 담합이 있었는지, 이권 카르텔적 요인이 작동했는지를 면밀히 추적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이권·부패 카르텔 보조금을 폐지해 수해복구에 투입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장관 기자간담회 발언 직후 김준희 출판진흥원장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주 문체부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문체부가 지난달 산하 기관을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최하 등급(D등급)을 받은 것에 영향을 받아 사표를 제출했다며 박 장관의 '이권 카르텔' 발언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원장은 "오랫동안 전문경영인으로 지내왔는데 경영평가에서 '미흡'을 받은 데 책임을 지는 게 바르다고 생각했다"며 "여러 이유를 댈 수도 있지만 구차한 느낌이 들어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출협은 "결국 압력을 못이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은 장관에게 사표를 냈다. 한국문학번역원장도 끊임없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고 한다. 모두 지난 정권 시기 임명된 인사들"이며 "문체부 내에도 수백억씩 묶여있고 낭비되고 있는 예산은 보지도 못한 채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체부 "출협 회장 정당한 감사 받아라" 재차 비판
문체부는 출협 성명에 25일 반박 입장문을 내고 "출협 윤철호 회장은 교묘한 왜곡과 변명, 책임회피를 하지말고 정당한 감사를 받으라"고 반박했다.
문체부는 "국민의 피와 땀, 눈물이 담긴 세금이 들어간 사업에 치명적인 도덕적 타락이 포착될 경우, 정부가 이의 내막과 진상을 밝히는 것"이라며 전날 박 장관 기자간담회 발언 못지 않은 강도 높은 수사까지 사용했다.
문체부는 "이미 2021년 출판진흥원 노조가 도서전의 수익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조사가 진행됐다"며 "윤철호 회장이 주도하는 도서전을 둘러싼 회계 논란은 출판계의 만성적인 개탄과 의심의 대상이었다"고 비난에 가까운 입장문을 냈다.
도서전 관련 감사에 대해 문체부는 출협이 △수익금을 자부담 항목으로, 규모도 크게 축소해 보고 △각종 수익금 내역 통장 블라인드 처리해 제출했다며 교묘한 왜곡과 책임회피에서 벗어나 이번 감사에 협조하라고 했다.
6월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문화예술 단체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가담자로 지목된 오정희 소설가의 '2023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위촉에 항의하다 대통령경호처 경호원들과 경찰에 제지당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김건희 여사가 6월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앞서 전시 부스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판문화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재현될까 우려
출판계에서는 과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사태가 재현될까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 중견 출판업계 관계자는 "과거 문화예술계는 블랙리스트로 엄청난 홍역을 치른바가 있다. 여전히 그 피해가 남아있다"며 "나라 안팎에서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 대해 정치 지도자들이 책임있는 사과나 해법을 내놓기보다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적으로 돌려 막기 하려는 행위가 감지되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이 떠오른다"고 우려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정치·사회·언론·문화계 등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과 검열, 지원배제 등을 통해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이나 단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불거진 광우병 파동과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되자 국가정보원이 소셜미디어에서 파급력이 큰 '좌파연예인 대응 TF'를 만들면서 촉발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세월호 사건 등 이른바 시국사건 대응을 위해 문화예술계 인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관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올해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예술단체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가담자로 지목된 오정희 소설가의 '도서전 홍보대사' 위촉에 반발하다 축사를 위해 따로 참석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경호원들과 충돌한 바 있다.
한 창작자 단체 관계자도 "정부 보조금이나 문화예술인들의 행사가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왜 꼭 이번 수해 피해처럼 대규모 인명 피해나 대통령 가족 비위와 같은 국민적 공분을 살만한 사건들이 터지면 문화예술인부터 두들겨 맞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