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지난 주 서울에서 첫 회의를 했던 핵협의그룹(NCG)의 출범 배경에 이른바 '나토식 핵공유' 추진이 핵비확산조약(NPT) 위반이며, 그 대신 한미 양국이 핵 운용체계를 긴밀하게 일체화시키는 방향을 찾은 결과였다는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 나왔다.
지난 3월 사임했던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26일 오전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워싱턴선언과 한미동맹의 미래' 콘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 NCG의 출범 배경을 이같이 설명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내년 11월까지 한미 확장억제를 '작전계획화'해 우리가 핵운용 체계를 제대로 숙지할 수 있게끔 실무협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그 이유로 미국 대선 예비주자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적 사고'를 지닌 인사들이 있기 때문에, 만약 트럼프 행정부 시절처럼 미국이 신고립주의적 색채를 띠게 될 경우 외국과의 군사동맹을 경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었다.
쉽게 말해, 민주당 정부가 기존의 핵 관련 기조를 다소간 변경해서 만든 NCG가 공화당 정부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김 전 실장은 NCG 추진 배경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지침이 '북핵 고도화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킬 방안을 강구하라'는 것이었다"며 "미국은 냉전 시기부터 지금까지 확장억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동맹국들에 알려주기보다는 '미국을 믿어라'는 얘기만 반복해 왔고, 동맹국은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의 근거를 자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핵을 보유하지 않은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의 핵 운용체계에 깊이 접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며, "미국과 일부 나토 회원국 사이에 체결된 핵공유협정 또한 핵무기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술핵무기를 미국의 절대적 통제하에 둔 가운데 유럽 회원국의 항공기를 미국 핵무기의 운반수단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연합뉴스 국가안보실은 미국과 '일체화된 확장억제 시스템'을 수립하는 방안을 강구했는데 대부분의 비핵국가들은 '핵공유'가 핵비확산조약(NPT) 1조와 2조의 핵비확산 의무를 위반한다는 입장이었다며,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전술핵무기 한국 배치보다는 한미 양국이 핵 운용체계를 긴밀하게 일체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실제로 '핵공유' 방식은 1991년 한국에서 모두 철수했던 전술핵무기를 다시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해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일 뿐 아니라, 김 전 실장의 설명처럼 NPT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는 "나토식 핵공유가 가능했던 것은 NPT 체결 이전인 1966년에 완성됐기 때문으로, (지금은) 미국 전술핵무기를 얻기 위해서 미국 주도의 NPT를 탈퇴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그런 과정을 거쳐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탄생했고, 핵 기획을 넘어 핵무기 실행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실행력 제고를 한미 양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조율한다는 의미로 핵'기획(planning)'이 아닌 핵'협의(consultation)'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이라며 "미국은 지금까지의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확장억제 운용체계에 관해 구체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워싱턴 선언을 통해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는 "NCG는 미국이 '핵운용 신비주의'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우리가 실무협의를 통해 '확장억제의 작전계획화'를 요구하는 등 '핵운용 사실주의'를 향한 강렬한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며 "우리는 비핵국가이기 때문에 핵무기 운용에 관한 전문가가 매우 부족하고, NCG를 통해 핵 협의와 소통을 해나가면서 핵 기획, 작전 등에 관한 '디테일'을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NCG를 장·차관이 아니라 차관보가 대표하도록 양측이 합의한 것은 바쁘고 디테일을 잘 모르는 장차관보다 기획과 운용을 직접 담당하는 양국의 차관보가 국장·실무자들과 함께 상시적으로 소통하며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자는 취지였다"며 "다시 말해 미국이 '핵운용 신비주의'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우리가 실무협의를 통해 '확장억제의 작전계획화'를 요구하는 등 '핵운용 사실주의'를 향한 강렬한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행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5015에는 핵무기 사용 계획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으며, 핵전쟁 계획인 작계 8010은 미 전략사령부가 독자적으로 만든다. 김 전 실장의 발언은 NCG를 통해 유사시 북한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핵무기 사용 계획에 한국이 최대한 참여하고, 이를 우리가 기존 작계처럼 사전에 명문화하고 공유해 숙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는 "NCG는 미국이 제공하는 핵태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공유 및 핵 기획 협력체계이므로, 외교적·전략적 수준의 토의보다는 군사적 수준의 대응 방안을 중심으로 토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앞으로 진행될 실무협의를 통해 NCG가 수행할 주요 과업을 신속히 식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예로는 △양국 간 긴밀히 공유할 정보공유 목록 △공동 기획 지침 △향후 양국이 시행할 도상 훈련 및 시뮬레이션과 같은 연습 시행 방안 △북핵 위협 및 사용 임박 시 양국 정상 간 협의절차 △전략자산을 포함한 핵전력 전개 및 배치방안을 들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은 내년 11월로 예정된 차기 미국 대선을 언급하며, 대선 예비주자들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적 사고'를 가진 인사들이 있고 미국 우선주의가 신고립주의적 색채를 띠게 될 경우 외국과의 군사동맹을 경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한 2023년 7월 19일 시민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즉, 대선 결과에 따라 NCG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미국이 기존의 '핵 운용 신비주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의 무리한 인상을 요구하고, 유럽 등 다른 동맹 국가들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여 불확실성을 매우 증가시켰던 바 있다.
따라서 "앞으로 1년 반 정도(대선 전까지의 시간)가 '골든 타임'이라고 생각하고, 그 기간 내에 한미 확장억제를 '작전계획화'하고 핵 운용체계를 우리가 제대로 숙지할 수 있게 실무협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김 전 실장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NCG의 기틀이 잡혀 있어야 정권의 변동과 상관없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NCG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동맹국과 더불어 핵무기 사용을 위한 군사력, 독트린, 계획, 규칙 등이 제대로 정립돼 있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점을 우리가 미 대선 주요 후보들에게 설파하고,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주지시켜야 한다"고도 말했다.
미국은 국익보다 동맹에 대한 의무 때문에 분쟁에 개입한 사례가 5차례밖에 되지 않으며, 국익에 부합하는 경우엔 동맹조약 체결 여부와 관계없이 군사적 개입을 감행했으므로 "동맹국인 한국을 보호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