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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유해종과 멸종 사이에 놓인 신비한 '고라니의 초상'



책/학술

    [신간]유해종과 멸종 사이에 놓인 신비한 '고라니의 초상'

    이름보다 오래된: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

    가망서사 제공 가망서사 제공 조류독감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를 2년 간 기록하고 담아낸 '묻다'를 통해 사람에 대한 탐욕의 흔적을 쫓았던 문선희 사진작가의 신간이 출간됐다.

    어느 이른 아침, 차 앞에 갑자기 뛰어든 고라니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망설이듯 돌아보던 그 강렬한 순간을 잊지 못해 문 작가는 유해야생동물과 멸종위기종 사이에 놓인 고라니를 쫓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름보다 오래된: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은 한국 야생에서 흔하며 종종 로드킬 사고를 당하거나 농가로 내려와 밭작물을 헤쳐 농민들의 원성을 사는 사슴과 동물이다. 보노루다 복작노루라 불리기도 한다. 한국과 중국에 서식하며 중국에서는 멸종 위기종이지만 전 세계 개체수중 60%가 서식하는 한국에서는 천적이 없고 '유해야생물로'로 분류돼 수렵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막상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서식지 상당 부분이 난개발로 침범당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라니를 찾아 첩첩산중까지 다니는 것만으로도 야생의 삶이 얼마나 인간의 등쌀에 시달리는지 체험했고, 생태적 고려 없는 개체 수 조절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가망서사 제공 가망서사 제공 이 책에는 저자가 10년간 만난 고라니 200여 마리 중 50여 마리의 초상이 실려 있다. 인간이 고라니를 향해 폭력을 가하지 않는 유일한 장소인 야생동물구조센터와 국립생태원 등 '비무장지대'에서 비로소 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고라니의 얼굴들이 첫눈에는 그저 순수하거나 평화로워 보일지도 모른다. 구조센터로 옮겨진 아기 고라니들은 젖만 땐 후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다. 어미로부터 생존법을 배우지 못한 채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구조센터 조차 고라니 구조와 포획을 동시에 하는 생사의 교차점이다. 인간적인 이해와 방식으로 생태 문제를 해결하려는 딜레마가 고라니를 둘러싸고 있다.

    "서로를 의식할 때 그르는 긴장감과 떨림 속에서 고라니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비무장지대' 중에서

    고라니 스스로 저자의 눈을 들여다볼 때까지 몸을 낮춘 채 하염없이 기다렸다. 생명체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드러내는 단 하나뿐인 얼굴을 중심으로 찍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마다 이름을 지어주었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얼굴들을 드러냄으로써 생태계에서의 인간의 역할을 다시 묻고자 한다.

    저자는 이 얼굴들이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말한 윤리적 책임을 절실하게 요청하는 '타자의 얼굴'로 다가올 것이라 말한다.

    한국에서 고라니가 절멸한다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라 말하는 저자는 고라니를 흔하고 하찮은 존재로 대하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생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물으며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 경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말을 빌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고라니들의 입장에서 인간 중심의 세상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 같지 않을까 …(중략)… 눈을 감으면 고라니들이 그 죽음의 시스템에 붙들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이 떠오르곤 했다."
    -'생사의 교차점' 중에서

    저자의 고라니 초상과 관찰록은 담담하면서도 아련한 얼굴로 그렇게 독자들을 마주한다.

    문선희 글·사진ㅣ가망서사ㅣ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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