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캡처. 연합뉴스"살찌기 싫으면 칼로 혀를 베어서라도 먹지 말라니…"
광주광역시 남구에 사는 박상현(29)씨는 우연히 소셜미디어(SNS)에서 돌아다니는 무서운 문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무시무시한 문구는 바로 온라인에서 떠도는 프로아나(pro-ana) 8계명 중 하나다. '프로아나'는 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Anorexia)'에서 '아나(Ana)'를 합성한 단어로, '거식증을 옹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박 씨는 "면도칼로 본인의 혀를 벨 각오로 먹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어딨나. 이런 말까지 나올 정도로 먹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고 말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에는 '8계명' 외에도 프로아나 참여를 유도하는 극단적인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마른 몸과 정상적인 체중의 몸을 비교하거나, 음식을 씹고 뱉는 방법에 대해 공유하고 있다.
이에 조성남 국립법무병원 원장은 "사람들이 '프로아나'라는 정신과 질환을 잘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SNS에서 모여 함께 합리화하려는 것"이라며 "잘못된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극단적인 8계명까지 나오고 있다. 프로아나를 추구하면 살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영양공급이 부족해져서 피부도 나빠지고 장기 손상까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중독범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도 "매우 충격"이라며 "섭식장애 환자들은 스스로를 계속 뚱뚱하다고 죄악시하며 살찐 것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수단으로 식욕억제제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SNS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극단적 프로아나의 확산만이 아니다. 마약류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식욕억제제 대리구매도 성행하고 있다.
나비 모양의 알약처럼 생겨 '나비약'이라고도 불리는 '디에타민'이 프로아나 실천을 위한 필수 약품으로 유행하면서, 이를 처방받기 어려운 사람의 경우 SNS에서 대리 구매하려는 사례가 늘어났다.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트위터에 '디에타민', '대리구매' 등을 검색하면 디에타민 불법 판매자와 구매자의 게시글을 여럿 볼 수 있다. SNS를 활발히 사용하는 청소년도 '다이어트약 팝니다'라는 문구가 올라오면 SNS 메신저 기능으로 연락을 주고받아 쉽게 약을 구할 수 있는 구조다.
디에타민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체중감량 효과가 빠르지만, 뒤따르는 부작용이 매우 심각하다. 뇌를 자극하는 각성제로 인해 쉽게 잠들지 못하고 피로감을 겪게 해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중독성이 크고 내성이 생기는 마약류이기 때문에 장기간 복용하면 효과가 떨어지고 더 많은 양을 찾게 된다.
20살부터 22살까지 불연속적으로 디에타민을 복용한 직장인 서모(26)씨는 "다이어트에 큰 스트레스를 느끼다 디에타민으로 쉽게 살을 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약을 먹었는데 쉽게 끊을 수 없었다"며 "병원에 가도 디에타민 원리나 주의사항을 간략하게만 설명하고 바로 처방해 준다. 오래 먹다 보니 요요현상이 와서 더 반복적으로 먹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예체능을 전공하는 정모(22)씨는 오디션을 위해 항상 마른 몸매를 유지해야 했고, 디에타민을 알게 된 후 1년 동안 복용을 이어갔다고 한다. 정 씨는 "1년 정도 식욕억제제를 먹으니 제대로 된 식사를 안 하게 돼서 몸의 기운이 없고 금방 지쳤다. 하지만 살로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다이어트약이 더 많이 필요하고 뭐든 할 것 같아서, 병원에서 구할 수 없다면 대리구매라도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조성남 원장은 "디에타민 같은 식욕억제제는 폐동맥 고혈압이 가장 큰 부작용이다. 심장이 안 좋으면 더 치명적이고, 협심증이 올 수도 있다"며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2018년 식약처에서 마약류 통제·관리시스템을 만들어 중복처방이 힘들어지면서 SNS상 식욕억제제 대리구매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SNS에서 이뤄지는 식욕억제제 대리구매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특징이 있어 일일이 규제하기 어렵다. 마약을 특정 장소에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을 사용할 경우 단속은 더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암암리에 이뤄지는 '마약류 식욕억제제 대리구매' 규제가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면서, 중독되기 전 '사전 예방'을 위해 더 노력할 때라고 말한다.
박성수 교수는 "살 빠지는 약에 대한 광고가 무분별하게 나오다 보니 약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약이니까 먹어도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지만,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진다. 형식적인 마약류 의약품 예방 교육을 바로잡아 학교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며 "무조건 '사전 예방'이 첫 번째"라고 짚었다.
조성남 원장도 "(마약류 식욕억제제) 전문 판매상을 적발해 패가망신할 정도로 처벌해야 한다"며 처벌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중독은 호기심 한 번으로 시작되는 것이니, '중독'이 '무서운 질병'이라는 것을 알고 입문도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