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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을 수 업소'…옛 대한제국 공사관[워싱턴 현장]

미국/중남미

    '밋을 수 업소'…옛 대한제국 공사관[워싱턴 현장]

    워싱턴DC 로건서클에 위치한 옛 대한제국 공사관의 모습. 최철 기자워싱턴DC 로건서클에 위치한 옛 대한제국 공사관의 모습. 최철 기자
    한국을 수식하는 단어를 꼽아보면 유독 '기적'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간다. '한강의 기적'이 대표적이다.
     
    마침 지난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이 표현이 등장했다.
     
    미 하원 중국 특위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최철 기자미 하원 중국 특위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최철 기자
    미 하원 중국특위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이 예고없이 이날 행사에 참석해 "정전협정이 체결됐던 1953년 한국이 얼마나 황폐화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한국은 완전한 기적이다"라고 말한 것.
     
    '기적'이라는 말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으니 'incredible'이라는 단어의 뜻과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대한제국 공사관에 전시돼 있는 '영한 사전'의 모습. 최철 기자대한제국 공사관에 전시돼 있는 '영한 사전'의 모습. 최철 기자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영어 단어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기적'이라는 말을 듣고는 '옛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대한제국 공사관)'에서 봤던 영한 사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사전은 대한제국 공사관에서 직접 만들어 썼던 것으로 보이는데, 140쪽이 펼쳐진 이유는 아마도 해당 쪽에 'independent'라는 단어가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봤다.
     
    다만 필자는 '밋을 수 없소'라는 설명이 낯설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 'incredible'에 먼저 눈이 갔다.
     
    대한제국 공사관을 둘러보고 역사를 더듬더듬 짚다보니 어쩌면 이곳이 또 하나의 '믿을 수 없는', 기적 공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한제국 공사관은 백악관에서 1.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국 워싱턴 DC의 노른자위 땅인 로건서클에 위치해있다.
     
    일단 이 건물 꼭대기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대한제국이 사들였으나, 일본에 빼앗겨 다시 미국에 헐값으로 넘겨졌던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서린 듯 했다.
     
    대한제국 공사관 옆에 설치된 걸개 그림. 한미동맹 70주년을 상징하듯 한미 양국 의장대가 국기를 맞잡고 있다. 최철 기자대한제국 공사관 옆에 설치된 걸개 그림. 한미동맹 70주년을 상징하듯 한미 양국 의장대가 국기를 맞잡고 있다. 최철 기자
    건물 왼쪽에는 1953년 미국 의장대와 2023년 대한민국 의장대가 한미 양국의 국기를 맞잡고 있는 모습의 걸개 그림이 세워져있다. 한미우호의 요람답게 한미동맹 70주년을 자축하고 있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보면, 이 건물은 지금의 평온한 모습과는 달리 아픈 근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조선에서 열강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던 시기 고종은 대한제국 황실 비자금을 털어 미 워싱턴 중심가의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빨간 벽돌집을 2만5000달러에 사들였다. 자주 외교의 본거지로 삼고자했던 것이다.
     
    하지만 1910년 강제병합 직후 일제는 이 건물을 단돈 5달러에 빼앗고 미국인에 10달러에 팔아치웠다.
     
    당시 제한제국 공사관에 근무했던 이완용과 부인의 모습. 최철 기자당시 제한제국 공사관에 근무했던 이완용과 부인의 모습. 최철 기자대한제국 공사관에는 이완용의 사진도 전시돼 있다. 이완용은 당시 주차미국참찬관(駐箚美國參贊官)으로 발령받아 박정양 주미공사를 따라 이곳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이다.
     
    이완용은 나중에 3대 주미공사로 승진하기도 했는데, 한일 합병후 결국 공사관의 문을 닫는 데 가장 크게 일조한 사람이 된다.
     
    일본이 공사관을 맘대로 처분했다면, 청나라는 소위 '영약삼단(另約三端)'이라는 황당한 원칙을 만들어 공사관원들을 괴롭혔다.
     
    청나라는 조선이 미국에 독자적인 공사관을 만들고 외교관을 파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조선을 속국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영약삼단이란 첫째, 주재국에 도착하면 조선 공사가 청나라 공사를 먼저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부에 간다. 둘째, 회의나 연회석상에서 조선 공사는 청나라 공사 밑에 자리잡는다. 셋째, 중대 사건이 있을 경우 조선 공사는 반드시 청나라 공사와 미리 협의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워싱턴DC를 방문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 공동취재단 제공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워싱턴DC를 방문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 공동취재단 제공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지난 10일 워싱턴DC를 찾았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도 특파원 간담회에서 대한제국 공사관 방문 얘기를 꺼내며 "공사관에서 '영약삼단' 얘기를 듣고는 울컥해 눈물을 쏟을 뻔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하튼 이 공사관을 되찾아오기까지는 무려 10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난 2012년 민관이 힘을 합쳐 350만 달러를 주고 이 건물을 다시 사들였고, 6년 뒤 원형대로 복원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상징성을 감안해 지난 2018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일에 맞춰 전시관 형태로 개관한 당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계 인사와 당시 대한제국 공사관원들의 후손 등이 방문했다.
     
    19세기말 워싱턴DC의 외교공관 중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역사적 건물이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하버드 대학교, 존스 홉킨스 대학교 관계자들 등 공사관을 찾는 현지인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미국 정부는 1972년 6월 이곳을 '역사지구'로 지정해 건물 변경 등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
     
    대한제국 공사관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본 모습. 최철 기자대한제국 공사관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본 모습. 최철 기자
    그래서인지 실제로 지금 공사관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봐도 당시 대한제국 공사관 직원들이 봤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또한 대한제국 공사관은 역사속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현재도 '외교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간담회 등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는 대한제국 공사관 식당의 모습. 최철 기자간담회 등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는 대한제국 공사관 식당의 모습. 최철 기자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시 동행한 김건희 여사는 탈북민 및 북한문제 전문가들과의 간담회를 이곳에서 열었다. 당시 고(故) 오토 웜비어의 모친도 초청했다.
     
    오토 윔비어는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3학년 재학 중이었던 지난 2016년 북한 관광차 평양을 방문했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복역 17개월만에 북한에서 겨우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6일만에 숨졌다.
     
    지난 5일(현지시간) 대니얼 크리턴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대한제국 공사관을 찾아 조현동 주미대사 등과 기념촬영을 했다. 주미대사관 제공 지난 5일(현지시간) 대니얼 크리턴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대한제국 공사관을 찾아 조현동 주미대사 등과 기념촬영을 했다. 주미대사관 제공 
    지난 5일에는 대니얼 크리튼브링크(Daniel Kritenbrink)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주미대사와 함께 이곳을 찾기도 했다.
     
    주미대사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함께 공사관을 방문한 것은 공사관 개관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다.
     
    배우 송혜교 씨가 후원한 대한제국 공사관 안내 소책자. 최철 기자배우 송혜교 씨가 후원한 대한제국 공사관 안내 소책자. 최철 기자
    한편, 대한제국 공사관에 들어가면 공사관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제작된 안내 소책자가 놓여져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병기한 이 안내서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기획하고 배우 송혜교 씨가 1만부를 후원한 것이다.
     
    또한 공사관은 방문객이 작성한 엽서를 무료로 원하는 곳까지 배송해준다. 일제의 강제병합으로 공사관이 빼앗기자 당시 교민들은 공사관 위에 태극기를 크게 그려 넣은 엽서를 인쇄해 나눠 가지며 독립을 향한 열망을 잊지 않았다.
     
    대한제국 공사관에 비치된 무료 엽서. 공사관 위쪽에 손으로 그려넣은 태극기가 선명하다. 최철 기자대한제국 공사관에 비치된 무료 엽서. 공사관 위쪽에 손으로 그려넣은 태극기가 선명하다. 최철 기자
    무료 엽서는 당시 재미한인사회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엽서를 실물 복제한 것이다.
     
    공사관 관람은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 ~ 오후 4시이다. 매주 월·화는 휴뮤일. 무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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