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 제공 일본의 시각장애인 언어학자이자 유명 칼럼니스트 호리코시 요시하루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향한 거침 없는 시선으로 소통을 이야기하는 책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이 국내 출간됐다.
점자로 살아가는 시각장애인 언어학자인 그는 두 살 무렵 소아암의 일종인 '망막아세포종'을 앓고 두 눈을 잃었다. 책은 시각장애인으로 자라온 배경과 자신이 마주한 사회적 구조에서 느낀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유쾌하고 거침 없이 털어 놓는다.
일상 속 물건부터 공동체를 유지하는 제도들까지 모든 것이 '볼 수 있음'을 전제로 만들어지고 굴러간다. 저자는 장애를 결핍이 아니라 차이로 여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눈으로 보지 않는 부족'과 '눈으로 보는 부족'은 그런 맥락에서 쓰였다.
저자가 장애 학생들이 흔히 공부하는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장애학에 몸담지 않고 언어학을 전공한 것도 언어학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싶었던 이유도 컸다고 한다.
책은 장애인 배려의 만능키로 여겨지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에 지장을 주는 물리적·심리적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 정책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말한다.
열차 통근길에 환승 시간이 짧고 배차 간격이 긴 역에서 서두르려 하자 자신을 '보호'하려는 역무원에게 제지 당한 경험, 다른 승객들과 달리 10분 전부터 준비하도록 채근당한 일화를 소개하며 융통성 없는 배리어프리를 마주할 때의 난처함을 토로한다.
'눈으로 보는 부족'이 그간 '눈으로 보지 않는 부족'에 대해 넘겨짚어온 것을 깨뜨리려는 에피소드들은 '배려'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장애인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가 벌어질 때 반대 의견의 근거로 등장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논리에 대해, 저자는 공리주의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모두가 양보하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시각장애인으로 그가 일본 사회를 보는 방식은 장애 관련 이슈가 찬반 논의의 영역으로 넘어가며 갈등이 고착화된 한국 사회의 돌아보게 한다.
호리코시 요시하루 지음ㅣ노수경 옮김ㅣ김영사ㅣ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