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공동취재단'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는 한국은행(한은)의 메시지에도 시장은 별로 긴장하지 않는 기류다. 오히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맞물려 가계대출이 계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빚투(빚내서 투자) 현상'마저 심화되고 있다. 대외 요인으로 인해 원·달러 환율도 다시 상승세다.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은으로선 이런 상황의 해법으로 그간 메시지에 그쳤던 '추가 인상'을 단행할 경우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한 달 새 6조 원 증가
한은이 최근 발표한 '7월 중 금융시장 동향' 통계를 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정책모기지론 포함)은 1068조 143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달 전보다 5조 9553억 원 불어난 액수로, 2021년 9월 이후 22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고금리와 맞물린 부동산 시장 위축 등의 영향으로 올해 들어 3월까지는 연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4월부터 4개월 연속 증가 중이다. 증가폭도 4월(2조 2964억 원), 5월(4조 1557억 원), 6월(5조 8296억 원)로 점점 불어나는 추세다.
이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7월 은행권 주담대 잔액은 전월 대비 5조 9636억 원 늘었지만,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소폭 줄어 주담대와 기타대출을 합친 가계대출의 증가액은 주담대 증가액을 밑돌았다. 은행권 주담대는 3월부터 증가 전환돼 5개월 연속 늘었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올해 초부터 정부가 이어온 규제 완화책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2월부터 투기·투기과열지구 15억 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이 허용됐고 무주택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50%로 일원화됐다. 소득 제한 없이 최대 9억 원의 주택을 담보로 5억 원까지 대출할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도 1월 말 출시됐다. 지난달부터는 전세보증금 반환용 대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서 제외됐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7월 의사록을 보면 한 위원은 "최근 주택관련대출의 증가는 거시 건전성 정책의 변화가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은 구두 경고에도…시장 시선은 '정부 규제 완화'
연합뉴스가계대출의 급격한 증가는 원리금 상환 부담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한은도 우려하는 사안이다. 때문에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금통위의 '4연속 기준금리 동결' 결정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가 예상보다 더 크게 늘어난다면 금리 뿐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든지 여러 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금통위원들이 0.25%포인트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설명도 했지만, 이후 발표된 대출 현황을 보면 시장은 정부의 규제 완화 쪽에 더 시선을 두고 있는 듯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 총재 발언의 효과가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빚투 지표'로 여겨지는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최근 '테마주 열픙'과 맞물려 20조 원을 넘어선 것도 느슨해진 시장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 더해 중국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위안화 약세와 국제신용평가사의 미국 국가·중소은행 신용등급 강등 여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원·달러 환율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지난달 13일 1274.0원이었던 환율(종가 기준)은 10일 1316.0원으로 42원 올랐다.
8월 기준금리 결정 앞둔 한은…'추가 인상' 카드 꺼낼까
여러모로 기준금리 추가 인상 요인은 늘어나고 있지만 한은이 이를 실제로 단행할 경우 연체율 상승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경기 회복 지연 등 또 다른 리스크가 부각될 수 있어 그야말로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 선임연구위원은 같은 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가계부채 상황은 기준금리 인상 요인이지만 금융안정의 또 다른 측면, 즉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상황을 비롯한 금융기관 리스크는 기준금리 인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며 "한은으로선 하나의 수단으로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하기에 통화정책의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기준금리 유지'도 정책 결정인 만큼 한은이 동결 기조를 장기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선 '인상 불가피론'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가계대출의 양적인 확대가 연체율 상승 등 질적 위험도 증가시키고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대출 확대세를 제어하는 건 여러모로 금융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당국은 주담대 위주의 가계대출 증가세에 우려가 커지자 일단 미시 정책 조정을 통해 대응하려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이세훈 사무처장 주재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한은, 금융감독원, 주택금융공사, 은행연합회, 금융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함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해 상황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다수 은행들이 최근 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 등이 DSR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없는지 등 대출 태도를 점검하기로 했다. 당국은 11일 신청분부터 일반형(주택가격 6억원 초과 또는 연 소득 1억원 초과 대상)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는 특례보금자리론의 금리를 오는 9월에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편 한국시간으로 이날 밤 발표된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해 6월 상승률인 3.0%는 웃돌았다. 시장 예상치(3.3%)보다는 낮고, 한 때 9%를 웃돌았던 작년에 비해 크게 완화된 만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9월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이 부각되며 달러 강세는 잠시 진정될 수 있다. 그러나 연준의 금리 결정 전 8월 CPI 발표가 한 차례 더 남아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