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위안/달러, 엔/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중국 경제 위기 우려에 미국 통화정책을 둘러싼 시장 긴장까지 더해지며 17일에도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원화 가치는 중국 위안화와 동조돼 하락하고,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는 치솟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연중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강달러 현상을 비롯한 금융시장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관측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1원 오른 1342.0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1340원선 돌파는 지난 5월 2일(1342.1원) 이후 3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장 초반에는 5월 17일에 기록한 연고점(1343.0원)을 다시 찍기도 했다. 환율은 5거래일 연속 올라 이 기간 상승폭만 26.3원이다. 이달 들어 상승폭은 67.4원에 달한다. '킹달러 현상' 우려가 또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중국 경기 침체 상황과 맞물린 부동산 업계의 도미노 디폴트(부도) 우려가 커지면서 위안화 약세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재차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는 더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간밤 발표된 연준의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는 대다수 참석자가 "인플레이션에 상당한 상승 위험이 계속 목격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추가적인 통화 긴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9월 FOMC 회의에서의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하고 있는 시장을 긴장하게 했다. 미국의 7월 산업생산이 전월 대비 1.0%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0.3% 증가)를 크게 웃돈 점도 달러 강세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강한 성장세는 연준의 추가 긴축을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 연합뉴스중국에선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영문명 컨트리가든)과 국영 부동산 업체인 위안양(시노오션)이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하면서 디폴트 위기에 직면했다. 대표적인 중국의 부동산 신탁회사인 중룽국제신탁도 만기 도래 상품의 현금 지급을 미루면서 부동산 위기가 금융시장으로까지 전이되는 기류다. 위안화·달러 환율은 이날 역외 시장에서 7.3위안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 수준에 육박했다. 그만큼 위안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으로, 중국과 아시아 권역으로 묶인 한국의 원화 가치도 동반 하락하는 모양새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에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도 큰 만큼, 외국인들은 중국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도 같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라며 이 같은 중국발 불안 심리는 하반기 외환시장에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연구원의 송민기 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컸는데, 반대 상황이 전개되면서 (환율 상승 움직임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험자산 투자심리는 위축되면서 주식시장 약세도 이어졌다. 같은 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23% 내린 2519.85에 마감했다. 지수는 장중 한 때 2482.06까지 밀리며 5월 17일 이후 처음으로 25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지수 하락은 5거래일 연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 기간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9683억 원 어치, 기관은 7226억 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이처럼 불안한 외환·주식시장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지금은 중국과 미국이 서로 대비되는 경제 상황을 보여주면서 두 상황이 동시에 우리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향후 미국의 경제 지표가 시장 기대치를 지나치게 웃돌지 않으면서 긴축 우려가 추가적으로 커지지 않거나, 중국 관련 상황이 단기적으로라도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 시장 불안은 당분간 약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당국은 일단 불안 심리 확산을 차단하는 데 메시지의 초점을 두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을 둘러싼 우려에 대해 "국내에서 중국 부동산에 많이 투자한 상황은 아니기에 (중국 상황이)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확률은 상당히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우리나라 실물 경제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그런 (간접 영향) 경로는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 긴장을 놓고도 그는 "아직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특히 중국 경제 상황과 관련해선 당국의 강도 높은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경제 상황은 간접적인 형태로라도 한국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위험 관리에 매우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제금융센터가 국내 중국 금융 전문가들을 초청해 개최한 간담회에서도 중국의 부동산 위기에 따른 '금융시스템 붕괴론'은 과도하지만, 일부 부실 기업을 중심으로 디폴트 우려가 이어지며 시장 불안이 가중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