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연합뉴스전국경제인연합회가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경제인협회'로 재출범을 앞둔 가운데 4대 그룹 복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탈퇴했던 삼성은 '조건부 복귀'로 가닥을 잡았지만 정경유착 우려가 가시지 않아, 4대 그룹의 실질적 합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이 새 출발의 신호탄을 쏜다. 전경련은 오는 22일 오전 임시총회를 열고 한국경제인협회로 명칭을 바꾸는 동시에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된 전경련은 지난 6년 간 시련의 세월을 겪었다. 당시 정권 핵심 실세들과 재벌들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해체 수준까지 몰린 것이다.
국정농단 관련 국정조사가 이어지면서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들이 연쇄적으로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위상이 흔들렸다. 이 와중에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보수정당이 재차 정권을 잡으면서 기류가 변했다.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2월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으로 오면서 혁신안 마련 등 쇄신 작업을 진행했다.
일각에선 정치인 출신인 김 직무대행이 사전 정지작업을 통해 '4대 그룹 복귀' 등을 꾀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지만, 김 직무대행은 지난 5월 '정경유착' 탈피를 위해 '윤리헌장' 제정안 등을 내놓기도 했다. 외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별도 조직인 '윤리경영위원회'를 통해 정경유착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삼성 등 4대 그룹은 지난 2017년 전경련을 탈퇴했지만, 일부 계열사들은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 회원사에 속해 있다. 재출범 과정에서 전경련이 한경연을 흡수·통합하기 때문에 한경연을 탈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회원사 지위가 유지된다. 이 때문에 전경련 가입은 이사회 승인 의결 사항이 아니라 보고를 통해 진행된다.
전경련은 지난 1961년 설립 당시 사용했던 '한경협'으로 단체명을 바꾸면서까지 환골탈태를 선언했지만, 재계 내에선 여전히 정경유착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분위기다. 특히 4대 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은 상태지만 계열사 5곳 중 1곳은 명시적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등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전경련 복귀안을 각각 보고했다. 삼성의 5개 계열사 중 삼성전자는 지난 18일 이사회를 열고 한경연 회원 자격 승계에 대해 보고했고 나머지 계열사도 이날 이사회를 열었다.
전경련 탈퇴 이후에도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5개 계열사가 한경연 회원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들 중 삼성증권에서 이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18일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재차) 가입했을 경우 전경련의 정경유착 행위가 지속된다면 즉시 탈퇴할 것을 권고했다"고 정경유착 사태 재발을 우려하며 '조건부 승인'에 동의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SK그룹 계열사인 SK와 이노베이션, 텔레콤, 네트웍스 등도 이사회에서 보고를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그룹과 LG그룹은 내부 논의 중이지만, 삼성의 복귀 여부가 확정되면 대세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절차적인 복귀 이후 전경련 회비 납부를 위한 기금 출연 등 재정적인 사안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형식적인 서류 절차상 복귀 문제와 달리 기금 출연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온전한 복귀까진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정경유착 사전 방지 차원에서 자체적인 '윤리경영위원회'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애당초 '정경유착 행위가 있으면 탈퇴한다'는 식의 조건을 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경유착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보이지 않겠냐"며 "전경련이 이런 부분에 대해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업들 사이에서 여전히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출범과 함께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전환하겠다는 청사진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전경련은 산하 연구기관에 불과한 한경연을 흡수‧통합해 경제 전문성을 부각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해 인플레이션 방지법(IRA) 등 국외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수뇌부에서부터 경제 전문성과 거리가 먼 인사들로 채워질 조짐이 보이면서 잡음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전경련을 이끌었던 김 직무대행은 재출범 이후엔 상근 고문으로 남고, 상근부회장엔 외교관 출신인 김창범 전 인도네시아 대사가 하마평에 올랐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통화에서 "다른 조직도 아니고 4대 그룹이 중심이 된 경제 단체의 수뇌부에 비전문가들이 들어와서 조직을 경제 싱크탱크로 키운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겠냐"며 "과거와 달리 4대 그룹들 자체적인 글로벌 조직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전경련 가입을 통한 실익도 크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