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최근 수사결과를 보면 국내 단체들이 북한의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교류국 등의 지시를 받아 간첩 행위들을 한 것으로 발표가 되는데, 북한에서 통일에 관계되는 업무를 하는 데가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 통일부도 국민들이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홍보라든지 대응 심리전 같은 것들은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을 거 같고요. 제가 연초에 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북한 인권실상을 확실하게 공개하고, 그 진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것이 국가안보에 부합하고 국가안보를 지키는 일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4월 5일 국정과제점검회의 윤석열 대통령 발언)
국정원이나 국방부의 직무에 해당하는 '심리전'이 현 정부에서 처음으로 통일부의 과제로 언급된 장면이다.
먼저 우리 국민이 심리전의 대상인가하는 논란이 있었다. 통일부는 당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간첩사건 같은 북한의 불순한 기도에 우리 국민이 넘어가지 않도록 통일부가 심리전 대응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실상과 참혹한 인권 상황 등에 관한 정보가 널리 알려져 국민이 올바른 대북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통일부를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비교하면서 북한 인권실상의 전파가 바로 국가안보라고 강조한 만큼, '대응 심리전'은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북한내부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됐다.
윤 대통령이 통일부의 1차 조직개편을 앞두고 열린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통일부의 주요 직무로 언급한 것이 바로 '대응 심리전'인 셈이다.
윤 대통령 질타로 다시 조직개편한 통일부…신설부서 주목
통일부는 최근 조직개편방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 4월 11일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이 장기간 중단된 상황 등을 반영해 1차 조직개편을 단행했으나 윤 대통령이 이후 통일부를 '대북지원부'라고 거듭 질타함에 따라 4개월 만에 다시 2차 개편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통일부 조직개편의 방향과 특성은 교류협력국과 남북회담본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출입사무소 등 통폐합되는 부서, 평화정책과에서 위기대응과로 명칭이 바뀌는 부서만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지는 부서에서도 잘 드러났다.
신설 부서는 통일협력국과 그 밑의 통일인식확산팀, 통일정책실 메시지기획팀, 정보분석국 정보조사협력과 등이다. 모두 윤 대통령이 지시한 '대응 심리전'의 역할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조직개편 추진방향을 설명하는 자료에서 국내외 통일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통일협력국'을 신설하고, 특히 통일인식확산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북한 실상을 국내외에 적극 알림으로써 균형된 통일관과 북한관을 심어주는 한편 그 실상이 국제사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북한주민에까지 알려지도록 유도한다"고 밝혔다.
메시지기획팀은 "남북관계 상황에 맞춰 단호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기획·관리함으로써 통일·대북정책의 실효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메시지기획팀이 북한의 담화와 발표 등 현안에 대한 즉각적인 메시지 대응을 주로 한다면, 통일인식확산팀은 인권을 포함한 북한의 객관적인 실상을 중장기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는 일을 하게 된다.
또 북한의 객관적 실상에 대한 정보 접근을 위해 정세분석국을 정보분석국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정보조사협력과를 신설해 국내외 유관 기관 및 민간단체와 정보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정보 협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국정원의 과장급 인사를 통일부로 파견 받을 예정이다.
요컨대 신설부서들은 북한의 객관적 실상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확보하고, 그렇게 확인된 북한의 객관적 실상을 국내와 국제사회를 거쳐 북한 내부에까지 이르도록 압박하는 심리전 대응을 수행하는 셈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 내부적으로 이런 실상과 관련된 담론, 팩트 등이 충분히 객관적으로 알려지면 우리 사회와 국제사회를 통해 비록 간접적 방법이 될지언정 북한 주민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돼 인식이 조금 더 객관화되는 쪽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김영호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북한주민 자각과 변화 의도…실효성 논란도 제기
북한에 대한 체계적인 메시지 대응과 객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내부를 통합·강화하면서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자각과 변화를 유도해나간다는 발상이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 조직개편이 국내외 심리전 차원에서 거칠고 요란스럽게 제기되는 순간부터 사실 그 효과는 반감됐다. 신설부서를 가동한다고 해도 심리전으로 인식된다면 그 메시지는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메시지기획팀이든 통일인식확산팀이든 기본적으로는 여론전의 강화이다. 국내외 홍보기능과 언론대응을 아우르는 대변인실 직제가 있는데도 두 조직을 추가했다. 물론 북한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에는 강력하고도 정교한 논리로 대응해야한다.
그러나 한미일 공조에 대응해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남북 간의 말 폭탄 교환은 북한에 대한 불필요한 자극과 압박으로 자칫 한반도 긴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통일부의 여론전을 북한은 도발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힘과 의지로 억제된다. 그러나 평화를 관리하는 데는 힘만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 교류, 외교 등 아주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 관리에 대북 압박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신설부서에는 외부 충원…국정원 과장급도 파견
신설부서를 지휘하는 인사가 대체로 통일부 내부가 아니라 외부 충원이 이뤄진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통일협력국장과 통일인식확산팀장은 민간전문가를 선임할 예정이며, 정보협력 분야에는 국정원 직원의 파견을 받는다.
통일부는 이번 조직개편에서 개방형 직위를 기존의 5개 직위에서 11개 직위로 2배 이상 늘렸다. 이는 통일부의 부족한 부문을 민간 등 외부역량으로 보충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통일부 자체 역량에 대한 불신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장관과 차관, 통일비서관을 외부 인사로 임명한 데 이어 국장급 3개 직위와 과장급 8개 직위 등 모두 11개 주요 직위도 민간과 국정원 등 외부인사로 충원된다.
통일부는 조직개편이 확정됨에 따라 이 조직개편을 반영하는 대규모 인사에 착수했다. 조직개편으로 감축된 통일부 정원 81명을 선별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진다.
연합뉴스조직개편 반영 인사 착수…감축 정원 81명 선별 흉흉
5급 이하 직급 중 젊은 연령대의 타부서 전출인원, 통일부내 격무부서에 배치는 지원인원, 정원 내 결원 인원 등을 빼고서도 더 줄여야하는 인력은 통일부 내 국립통일교육원 연수과정으로 돌려야하는 상황이다. 타부서 전출이 사실상 막힌 4급 이상의 직원들이 주로 교육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일부의 허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과장급에서만 10여명이 교육 대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일단 정원 감축을 위해 직원들을 상대로 교육 희망 신청을 받는 중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통일부 대변인이 있는데도 메시지기획팀 등을 신설한 것은 북한과 말폭탄 대결을 야기할 수 있고, 국정원의 과장파견 등 연이은 외부인사 충원은 통일부에 대한 불신이자 능력 폄하를 반증한다"며, "조직개편에도 불구하고 사기저하로 통일부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헌법 66조에 대통령은 평화적 통일을 위해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된 부서가 통일부"라며, "조직개편을 통해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기능을 축소하면서 사실상 대북압박청으로 격하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