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인데 폰이 고장났어. 여기로 문자 줘."
올해 1월 김은진(가명)씨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받은 문자에서 딸의 이름을 발견했다. 처음부터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면 피싱으로 의심하고 삭제했겠지만, 단순히 연락을 달라는 문자를 보니 고민이 됐다.
김씨가 머뭇거리자 상대방은 "엄마, 나 액정이 깨져서 보험금 청구해야 돼"라고 재촉했고,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고 권유도 했다. 그제서야 상대방이 딸이라고 생각한 김씨는 앱을 설치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딸이 아닌 '메신저 피싱' 일당의 A씨였다. 메신저 피싱은 가족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휴대전화에 원격 조종 앱을 설치하게 해 계좌정보와 현금을 빼돌리는 범죄다. A씨 일당은 이같은 방식으로 피해자들로부터 43억원을 빼앗은 것으로 조사됐다.
메신저 피싱으로 시작된 경찰의 수사는 우연치 않게 마약 수사로 확대됐다. A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마약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A씨와 함께 국내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판매한 일당까지 검거해 모두 검찰에 넘겼다.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최근 컴퓨터 등 이용사기 등 혐의로 '메신저피싱 조직원' A(20대)씨 등 67명을 검거하고, 이 중 13명을 구속 송치했다.
A씨 등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가족이나 지인을 사칭한 메시지를 무작위로 보낸 뒤,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악성코드가 담긴 원격조종 앱을 설치하게 하고 계좌에서 현금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93명으로부터 43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발신번호를 '070'에서 '010'으로 바꿔주는 변작기를 이용해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등은 가족인 척 속이고 피해자를 유인한 뒤, 메시지에 속은 피해자에게 원격조종 앱을 설치하게 해 개인정보나 계좌정보를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같은 메신저 피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내에서 마약을 판매·유통하는 일당도 붙잡았다. A씨를 체포하면서 마약을 발견, 그가 마약 유통책이란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내 마약 유통책' A씨 등 8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이 중 4명을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지난 6월~7월 해외에서 들어온 필로폰 등을 소분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A씨 등은 상선으로부터 해외배송이나 무인택배함을 통해 건네받은 마약을 다시 무인택배함이나 에어컨 실외기 등 특정 장소에 놓고 가는 이른바 '던지기' 방식으로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등이 유통한 필로폰(650g)은 2만여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싱 의심 연락을 받으면 반드시 본인과 통화해보고, 신분증을 보내서 개인정보 노출이 걱정된다면 '개인정보노출자 사고예방 시스템'에 접속하거나 가까운 은행을 방문해 개인정보 노출 신청서를 작성해달라"며 "또 '엠세이퍼' 사이트에서 휴대전화 무단개통 여부를 확인하거나, '어카운트 인포'라는 앱에서 계좌개설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범죄에 대비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