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북한과 러시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주부터 거론되던 정상회담 가능성이 현실이 됨에 따라, 두 정상의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11일 오후 "김정은 동지께서 러시아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동지의 초청에 의하여 곧 러시아연방을 방문하시게 된다"며 "방문 기간 김정은 동지께서 푸틴 동지와 상봉하시고 회담을 진행하시게 된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크렘린궁도 이날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수일 내(in coming days) 러시아에 찾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 정부 당국자 등을 인용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타 군사협력을 위해 러시아 방문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현실이 된 것이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10월 12일에 북러수교 75주년을 맞는데 정상회담의 의미가 배가됐다"며 "의제는 군사협력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회담 의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될 무기 거래다. 북한은 구 소련식 무기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북한제 탄약은 상당수 러시아 무기와 호환된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물자가 부족해진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한이 비축하고 있는 다량의 포탄 등이 필요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이 그 대가로 무엇을 받을지가 가장 문제다. 북한이 지난 8일 공개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 영웅함 진수식에서 '핵잠수함(북한 기준으로는 핵무기를 탑재한 재래식 잠수함)'뿐 아니라 원자로를 추진 동력으로 사용하는 '핵추진잠수함(일반적으로는 이쪽을 핵잠수함으로 지칭)' 개발도 공언한 만큼, 잠수함이나 미사일 관련 기술을 이전받으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구 소련의 RD-250 로켓 엔진을 북한이 자체적으로 복제·개량한 백두산 엔진처럼, 러시아 군사기술이 북한에 흘러들어간 전례는 이미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또한 러시아로부터 도움을 받아 우주 로켓을 만들었다.
연합뉴스이외에 지난 5월 31일과 8월 24일 두 차례 발사에서 모두 실패한 군사정찰위성 관련 기술을 이전받으려 할 수도 있다. 정찰위성은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에서 북한이 제시한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인데, 두 차례 모두 로켓이 원인이 돼 실패했다. 우리 군은 5월 31일에 발사한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잔해를 인양해 분석한 결과 효용성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는데, 북한 입장에서는 위성과 로켓 기술의 이런 부족한 부분들을 러시아를 통해 메꾸려 할 수 있다.
다만 핵추진잠수함에 필수적인 원자로, 핵추진잠수함 설계와 같은 기술을 러시아가 북한에 얼마나 주려고 할지는 미지수다. 구 소련과 러시아는 외국에 재래식 무기는 자주 팔았지만 원자력 분야에서의 확산은 엄격하게 막곤 했다. 핵 관련 기술의 국제적 민감성을 고려해서다.
또 하나 거론되는 것이 북러간 연합훈련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7월 27일 북한의 자칭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 행사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중러 연합훈련을 공식적으로 제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정보위 여당 간사 유상범 의원이 밝혔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도 4일(현지시간) 소치에서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와 북한의 연합훈련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왜 안 되겠는가. 우리는 이웃"이라며 연합훈련이 '당연히' 논의되고 있다고 답했다. 북한은 냉전 시대에도 다른 나라와 연합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는 파격적인 행보다.
다만 중국은 중국대로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면 그만큼 한미일 3국 공조가 강화되기 때문에 대중 압박도 더해지므로, 곧장 연합훈련에 참여하기엔 일정 수준의 부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중러 또는 북러 연합훈련이 열린다면 북한의 형편없는 공군력을 감안할 때 동해에서 해군을 중심으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동해함대를 방문해 경비함을 타고 순항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하고, 김군옥 영웅함 진수 등 '해군무력'을 강조하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마침 블라디보스톡은 몇 년 전까지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던 곳이며, 본부가 근처 포키노로 이전한 현재도 상당수의 시설과 함정들이 남아 있기에 김 위원장을 위한 '별도 일정'이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