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금리 관련 현수막에 걸려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3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주담대를 포함한 은행권 가계대출도 5개월 연속 늘어 잔액이 1075조 원에 달했다. 사상 최대치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 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8월중 금융시장 동향' 통계를 보면 지난달 은행권 주담대(정책모기지론 포함)은 7조 원 증가해 잔액이 827조 8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0년 2월(7조 8천억 원) 이후 최대폭 증가다.
주담대는 올해 2월 3143억 원 감소한 뒤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윤옥자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주택경기가 올해 들어 회복 흐름을 보이면서 주택 구입 관련 자금 수요가 늘었다"며 "지금까지 주택 거래량 추이를 보면, 당분간 주담대 증가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잔액은 1천억 원 소폭 줄어 246조 원으로 집계됐다.
주담대와 기타대출을 합친 가계대출은 6조 9천억 원 증가해 잔액이 1075조 원이었다. 지난달에 이어 잔액 기준 또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고금리와 맞물린 부동산 시장 위축 등의 영향으로 올해 들어 3월까지는 연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4월부터 5개월 연속 증가 중이다. 증가폭도 4월(2조 3천억 원), 5월(4조 2천억 원), 6월(5조 8천억 원), 7월(5조 9천억 원), 8월(6조 9천억 원)으로 불어나는 추세다. 8월 증가폭은 2021년 7월(9조 7천억 원)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은행을 포함한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도 5개월 연속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같은날 발표한 '8월중 가계대출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6조 2천억 원 늘었다. 세부적으론 주담대가 은행권에서 7조 원 늘고, 제 2금융권에선 4천억 원 감소해 모두 6조 6천억 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타대출은 은행권과 제 2금융권에서 각각 1천억 원, 3천억 원씩 감소했다.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는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올해 초부터 정부가 이어온 규제 완화책이 꼽힌다. 지난해 12월부터 투기·투기과열지구 15억 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이 허용됐고 무주택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50%로 일원화됐다. 소득 제한 없이 최대 9억 원의 주택을 담보로 5억 원까지 대출할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도 1월 말 출시됐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7월 의사록을 보면 한 위원은 "최근 주택관련대출의 증가는 거시 건전성 정책의 변화가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앞다퉈 취급한 점도 가계대출 증가세의 또 다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가계대출의 급격한 증가는 원리금 상환 부담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이날 관리 방안을 내놨다. 50년 만기 주담대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고, 정책 주담대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의 대상도 축소해 서민과 실수요층에게만 공급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