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내 법인택시 차령을 최대 8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개정조례안이 발의됐다. 박종민 기자최근 서울시내 법인택시 차령(운행연한)을 최대 8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개정조례안이 발의돼 택시업계 내에서 차령 연장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법인택시기사들은 연간 10만km 이상의 주행거리를 소화하는 택시의 운행기간이 늘어날수록 차량 노후화가 극심해지고, 이는 기사‧승객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택시법인 측에서는 경영난을 호소하며 일률적인 차령규제로 인해 관리가 잘된 택시라도 반드시 교체해야하는 것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차량 노후될수록 안전성‧서비스 문제 발생'…서울 법인택시기사 반발
서울시내 한 택시 차고지 모습.국토교통부에서는 지난 3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자체에서 현행보다 2년 더 차령 연장을 진행할 수 있게 길을 열어 놓았다. 기존 시행령에서 지정한 법인택시의 최대 차령은 6년이다.
국토부는 기존 제도가 차량의 실제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차령만으로 일률적으로 운행을 제한하는 등 경직적으로 운영돼왔다며, 지자체별 특성을 반영한 택시 차령 연장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택시의 약 29%가 몰려 있는 서울시에서도 택시 차령 연장이 논의되자 택시기사들은 차량의 안전성과 승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문제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서울에서 32년째 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법인택시기사 김병문(57)씨는 차령 연장 개정안에 대해 "현장을 전혀 모르는 행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현재 주행거리 70만km를 넘긴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김씨는 "시속 70km 이상 정도로만 속도를 올려도 흔들림이 심해 운행 중 위험을 느낄 때도 많다"며 "엔진이 오래되다 보니 냄새가 심하고, 소리도 시끄러워 손님들이 차 상태가 왜 이러냐고 물어볼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회사에서 배차를 해줘 어쩔 수 없이 타고 있지만 승객을 모시기 민망할 정도의 차량 상태"라며 "회사에도 차량 변경을 요청했지만, 배정해줄 차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법인택시 운행경력 15년인 택시기사 이모(69)씨 역시 "택시요금까지 올라 손님들께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해도 모자란데 노후한 차에 탑승한 승객들이 어떻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한 택시업계 관계자도 "아무리 기사가 차량을 잘 관리해도 오래되면 냄새도 나고 관리가 어려워 승객들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많은 택시기사들이 현재 차령 연장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 법인택시 운행거리 56만km…'중대 결함 발생할 수 있어'
지난달 11일 '서울시 택시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은림 서울시의원. 서울특별시의회 제공서울시내 택시 차령 연장은 지난달 11일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소속 이은림 의원(국민의힘, 도봉) 외 48명이 '서울시 택시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점화됐다. 택시 차령을 최대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되, 구체적인 연장 기간은 시장이 정하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 의원은 발의 당시 "자동차의 갱신과 유지 기준이 택시운송사업자분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줬다"며 유연한 차령제도 운용을 통해 택시운송사업자의 경영 부담이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택시법인 사업주들은 택시 차령 연장을 통해 신차구입비를 아낄 수 있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법인택시사업자 단체 서울특별시택시운송사업조합(이하 서울택시조합)은 지난 4월 최근 3년간 차령을 넘겨 폐차한 서울법인택시차량이 연간 2880대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에 신차구입비에만 약 450억원이 투입돼 경영난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또한 서울택시조합은 차령 만료로 말소된 차량이 다른 나라에 수출돼 인기를 끌기도 한다며, 차령 제도를 현실에 맞게 바꿔 관리가 잘 된 차량의 적절한 활용법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국토부에서 시행령을 개정한 만큼 택시 차령 연장에 대해 서울시가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조례를 마련하고 있지 않아 (개정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며 "지난 회기까지 서울시가 차령 연장 여부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하지 못하는 등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현재 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조례안은 현재 서울특별시의회 교통위원회에 의해 보류돼있다. 그러나 이 의원은 택시 차령 연장에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는 만큼 서울시가 정확한 입장 표명을 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개정조례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서울시 택시정책과는 법인택시의 평균운행거리 등을 고려해 차령 연장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는 입장이다.
국토부가 지난해 10월 제공한 시행령 개정안 입법행정예고 자료에 따르면, 차령 6년 기준 서울시내 법인택시 평균운행거리는 56만km로 가장 높다. 법인택시노동자 단체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이하 택시노조) 역시 6년 기준 서울시내 법인택시의 평균운행거리를 50~60만km로 파악하면서, 40만km부터 차량의 중대 결함 발생 빈도가 증가한다고 밝혔다.
택시정책과 관계자는 "3월 국토부의 시행령 개정 이후 4월부터 곧바로 택시 차령 연장을 검토했고, 시민의 안전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평균운행거리 등을 고려했을 때 차령 연장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교통위원회에 반대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옥천에서는 '연장' 양산에서는 '부결'…차령 연장 지자체별 차이 보여
양산시의회. 연합뉴스지난 7월 옥천군에서 택시 차령 연장 조례개정안이 통과된 것을 시작으로 택시 차령 연장에 관한 지자체별 논의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옥천군 관계자는 "옥천군은 상대적으로 택시 호출이나 신호등이 많지 않아 차량 운행이 원활하고, 군 전체 택시 수도 100대 안팎으로 적어 차량 관리가 잘 돼 차령 연장이 이견 없이 통과됐다"고 전했다.
반면 양산시에서는 택시 차령 연장이 논의 끝에 지난달 무산됐다. 김지원 양산시의원(더불어민주당, 상북·하북·강서)은 택시 운행 제한에 차령 하나만의 기준이 아닌 보다 세부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같은 연식의 택시라 하더라도 주행 거리는 모두 다른데, 차령 이외 구체적으로 차량의 수명을 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차령 연장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이어 "택시 요금이 올랐다는 것도 시민들 입장에선 부담인데, 택시마저 더 노후화된 택시를 탄다면 시민들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성시에서도 지난 5일 개정조례안이 발의돼 택시 차령 연장에 대한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 앞서 경기도 택시운송사업조합 안성시조합은 택시 차령 연장이 포함된 개정안의 조속한 조례제정과 시행을 촉구해왔다.
이한나루 택시노조 정책국장은 "현재 국토부에서 명확한 평균운행거리 기준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지자체 측에 차령 연장 권한을 떠밀고 있어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며 "조례 통과로 인해 차령이 연장될 경우 그로 인한 위험 부담은 기사와 승객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18일자로 노컷비즈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