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내에 각 정당의 새해 인사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독자 제공도심에 무분별하게 내걸리는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전국 지자체에서 잇따르는 가운데, 부산시의회도 관련 조례가 상임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강행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소수 정당이나 단체의 비용 부담이 늘어날 여지도 있어 논란은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8일 부산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이승우 부산시의원이 발의한 '옥외광고물 등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안'을 수정 가결했다.
앞서 이 의원이 발의한 조례안 원안은 정당 현수막 개수를 읍면동별 4개 이하로 제한하고, 명절 인사 등을 제외한 현수막은 지정 게시대에만 게시하며, 혐오·비방 문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안설명에 나선 이 의원은 "정당 현수막의 무분별한 난립을 막고 시민 보행 안전 확보와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조례안을 발의했다"며 "시민 안전과 도시 미관을 위한 시의회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조례는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에서 잇따라 제정 또는 발의되고 있다. 포문을 연 건 인천시로, 지난 5월 조례 개정을 통해 현수막을 선거구 1곳당 4개로 제한하고 장소도 지정 게시대로 한정했다.
그러자 행정안전부는 지난 6월 이 조례가 옥외광고물에 저촉된다며 대법원에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효력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지난해 연말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은 정당 정책이나 정치 현안에 대한 현수막은 지자체 신고·허가 등 설치에 제한이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인천시 조례는 상위법 위반이라는 취지였다.
소송 제기에도 인천시는 조례에 근거해 정당 현수막을 계속 철거해나갔고, 2달 동안 1300여 개 현수막을 정비했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지난 14일 행정안전부의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해,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현수막 철거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지난 5월 4일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의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이런 맥락에서 정당 현수막 규제 조례안을 심사한 부산시의원들도 시민들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정당 현수막 규제나 조치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조례안 자체가 지닌 한계점이나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지연 부산시의원은 "이 조례는 옥외광고물법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법, 정당법 위반 여지가 있다"며 "현수막을 강제 철거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없어 매우 선언적인 조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에 지정 게시대가 3607개 있는데, 1천여 개가 정당 현수막으로 들어간다면 민간이나 시민단체 등은 게시가 어려워져 소수의 목소리를 닫아버리게 될 것"이라며 "정당 현수막 게시대가 있는 곳도 3개 구밖에 없는 실정인데, 인프라를 확보한 뒤에 조례를 마련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 유료로 운영하는 지정 게시대에만 현수막을 걸게 하면 비영리단체 등은 비용 부담을 겪게 되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는 거대 정당들만 현수막을 걸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는 현수막 규제 조례안을 일부 수정해 통과시켰다. 기존에 읍면동별 '4개 이하'였던 현수막 개수를 '1개'로 수정했고, 나머지 내용은 원안과 같다. 수정된 조례안은 오는 25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러자 정의당 부산시당은 19일 논평을 통해 "현수막 게시를 금지하는 조례보다 못하다"라며 즉각 반발했다.
정의당은 "유료로 운영하는 지정 게시대로 제한한 건 정당법을 무력화하면서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는 거대 양당만이 정당 현수막을 게시하겠다는 독점적 발상"이라며 "개정 조례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1회 게시에만 1100만 원 이상과 연간 1억 3800만 원 재원이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산시의회는 심각한 조례안을 폐기하고 정당 현수막 지정 게시대를 충분히 만든 이후 다시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며 "각 정당도 문제해결을 위한 회동과 공동선언 등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