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우원식, 양이원영 의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윤창원 기자검찰이 백현동 개발 비리와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 대표 측이 내놓은 혐의별 변소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통상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벌어질 피의자와의 논리 싸움을 앞두고 영장 청구 단계부터 이를 상세히 다룬 것을 두고 "영장 발부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영장 6쪽 분량…李 주장 10개 모두 "허위" 강조
2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이 대표에 대한 142쪽짜리 구속영장청구서 중 '피의자의 주요 변소에 대한 검토' 항목에 6쪽 분량을 할애했다. 검찰은 이 대표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밝힌 변소 내용을 10개 항목으로 정리하고 이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반박 논거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검찰은 우선 백현동 개발 비리 사건과 관련해서는 △브로커 김인섭과의 특수 관계 부인 △국토부 협박 때문에 용도 변경 △공사 사업참여 의무성 부인 △기부채납 충족 등 4가지 변소 내용을 반박했다.
연합뉴스 검찰은 "이 대표가 2010년 성남시장 당선 이후 김인섭과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하지만 김인섭은 이 대표와 유착 관계를 이어온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김인섭이 2015년 구속됐을 때도 측근을 통해 수차례 특별면회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적었다.
'국토부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용도지역을 변경했다'는 이 대표 측 주장을 두고서는 "용도지역 변경은 지자체가 임의로 판단할 사항이라는 회신을 국토부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허위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또 "2020 성남도시기본계획을 보면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는 공영개발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민간이 단독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복리에 부합하는 개발이 진행되도록 공사가 참여하는 법령상 임무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쌍방울 대북송금 건은 △표적 수사 주장 △부패기업 쌍방울과 경기도는 무관 △대북송금 비용은 쌍방울 자체 사업비라는 주장 △대북사업 몰랐다는 주장 △스마트팜 사업 대북제재 면제 주장 등 5가지 사항에 대해 하나씩 반박 논리를 폈다.
수사팀은 이 대표가 대북송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야당 대표를 탄압하기 위한 정치적 표적수사'라고 반발한 것에 관해서 "2021년 10월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받은 쌍방울 그룹의 이상 거래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됐다. 기업 비리 수사 과정에서 스마트팜 사업 비용 및 방북비용 대납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을 전혀 모른다'는 이 대표 주장은 허위라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이 이 대표에 수차례 통화했다고 진술하고, 이 대표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을 때 1억원 이상 후원금을 납부한 사실, 뇌물 공여자인 김 전 회장이 모든 범행 일체를 자백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 쌍방울 그룹 본사의 모습. 류영주 기자검찰은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800만달러가 경기도와 무관한 자체 사업비용이라는 주장도 "대북전문가나 통일부 공무원 모두 정부나 지자체 지원과 보증 없이 사기업 단독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진술한다"며 허구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 측은 검찰 조사에서 "스마트팜 사업 지원이나 방북 추진은 북한과 최대 접경지역을 보유한 경기도가 당연히 추진하는 통상 사무이고, 실무진이 진행한 세부 과정은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에 대해서도 "(이 대표가)이 사건 책임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 다른 공무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경기도청 수장인 도지사 방북을 요청하면서 이 대표 사전 결재나 승인 없이 진행됐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주장"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검사 사칭 재판 관련 위증교사 혐의를 부인한 데 대해서도 "이 대표와 위증한 증인 사이 통화녹음 파일을 보면 허위 증언을 요구한 사실이 명백히 확인된다"고 일갈했다.
"혐의 입증 자신감 표현"…일각선 "표결 영향" 분석
검찰 안팎에선 수사팀이 이처럼 피의자의 변소 내용을 영장 청구단계부터 상세히 다룬 배경을 "영장 발부에 대한 자신감 표현"으로 해석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통상 영장 심사 단계에서 변호인 측과 검찰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며 "검찰이 이를 청구서에 적었다는 것은 싸움의 논리를 미리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변호인이 어떤 주장을 하든 대비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른 재경지검의 부장검사도 "피의자 변소 내용을 영장 청구서에 서술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은 아니"라면서도 "이번 경우처럼 구체적으로 논박한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이 지난 2월 이 대표에게 처음 청구한 구속영장에서 이 대표 측 변소 내용에 대한 반박 항목은 1쪽을 넘지 않았다. 전체 청구서 분량은 173쪽이었다.
법무부 관계자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일각에선 이런 검찰의 서술에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각 국회의원은 표결을 앞두고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첨부된 구속영장 청구서를 읽게 된다.
당론으로 찬성 표결에 나설 국민의힘 등 여권 성향 의원과 일찌감치 부결 입장을 정한 '친명'계를 제외하면 민주당 내 '부동표'의 향방이 표결 결과를 좌우한다. 이들이 그간 이 대표가 주장해 온 결백 주장과 검찰의 반박을 읽는다면, 체포동의 반대표를 던지는 데 심리적 저항감을 느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지난 6월 이 대표는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했지만,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검찰의 영장청구가 정당하지 않다면 삼권분립의 헌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부결표를 던져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