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벼랑 끝에서 살아났다. 검찰의 구속영장이 27일 법원에서 기각되면서다. 2년 가까이 이 대표와 야권을 상대로 칼날을 겨눠온 검찰은 수사 정당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과 증거인멸 염려 정도를 종합하면 불구속 수사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전날 이 대표에 대해 9시간 15분 간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심리한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를 이렇게 적었다.
검찰이 제출한 수만쪽 분량의 수사기록, 140쪽이 넘는 구속영장 청구서와 1600쪽 의견서를 모두 검토하고도 이 대표를 구속할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백현동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형 토착 비리'로, 대북송금 의혹을 '정경유착의 대표사례'로 규정했다.
역대 두 번째로 긴 시간 이어진 마라톤 영장심사에서 검찰은 이 대표의 증거인멸 우려를 강조할 사건 관련 녹음파일까지 재생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이 대표에 대해 특경가법상 배임 및 특가법상 제3자뇌물죄, 외국환거래법 위반, 위증교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는 크게 △사안의 중대성 △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 등 세 가지다. 유 부장판사는 800자 분량의 기각 사유에서 이 대표의 구속 필요성뿐 아니라 주요 범죄 혐의 자체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음을 명확히 적시했다. 백현동 개발 사업도, 쌍방울 대북송금도 "의심은 가지만 혐의에 관한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다만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된다고 봤다.
구속영장 기각…인사하는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검찰은 작년 10월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중앙지검이 백현동 사건으로 압수수색에 돌입한 것은 올해 2월이다. 검찰이 오랜 기간 이 사건을 수사해 온 만큼 법원은 증거인멸 우려가 낮다고 판단했다.
유 부장판사는 위증교사 및 백현동 사건에 대해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물적 자료에 비추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이 관련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만큼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위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도록 한다는 취지다.
대북송금 사건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진술 번복에 이 대표가 관여했다는 주장도 역시 '증거 부족'을 이유로 기각됐다. 이 대표는 현직 제1야당 대표로서 또 다른 구속 사유인 도주 우려는 검찰도 처음부터 영장청구서에 적지 않을 정도로 없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 변호인인 박균택 변호사는 전날 영장심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두 개 검찰청이 1년 반에 걸쳐 광범위한 수사를 해 인멸할 증거 자체가 없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면서 "법리상 죄 자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 증거인멸 우려까지 갈 필요도 없지 않냐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했다.
검찰은 이날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됐다고 인정하고, 백현동 개발비리에 이 대표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있다고 하면서도 대북송금 관련 이 대표의 개입을 인정한 이 전 부지사 진술을 근거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한 판단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고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됐다는 것은 증거인멸을 현실적으로 했다는 것임에도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 판단하고, 주변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을 인정하면서도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모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해 보강 수사를 이어간 뒤 이 대표에 대한 영장 재청구 없이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도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혐의 소명 부족'을 이유로 기각된 만큼 영장 재청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