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국제유가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배럴당 100달러 돌파 전망까지 나온다. 끝 모르고 상승하는 유가 곡선에 업계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다만 표정은 사뭇 다르다. 유가에 민감한 대표 업종인 정유와 석유화학업계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정유사들은 마진 개선으로 이익 확대를 기대하는 반면, 석화업계는 원가 부담에 따른 실적 악화을 우려한다.
2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종가 기준 전일 대비 3.64% 오른 배럴당 93.6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94달러를 웃돌며 지난해 8월 이후 13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도 같은날 2.09% 상승한 배럴당 94.36달러로 마감했다.
연중 70달러대에서 오르내리던 국제유가는 90달러선을 넘은데 이어 어느새 10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실제 국제유가가 연내 100달러 고지를 찍을 거란 관측이 적잖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는 지난 20일 브렌트유의 12개월 이후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93달러에서 1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WTI의 가격 전망치도 배럴당 88달러에서 95달러로 올렸다. 심지어 미국 셰일업계에서는 배럴당 최고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유가의 가파른 상승세는 공급 차질 우려가 높아진 탓이 크다. 먼저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7월부터 진행중인 하루 100만배럴 자체 감산 정책을 오는 12월까지 연장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러시아도 연말까지 원유 수출을 하루 30만배럴씩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여기에 중국의 원유 수요가 줄지 않는 점도 수급 우려를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유가 상승을 체감하는 업계의 온도차는 상당하다. 유가 민감 업종인 정유와 석화의 엇갈린 표정이 대표적이다. 정유업계는 통상 유가 상승을 호재로 본다. 정유사는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가공해 되파는데, 국제 유가 상승은 결국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서다.
정유업계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상승기에 접어든 점도 이같은 이익 확대 구조를 견고하게 만든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비용을 뺀 금액이다. 지난달 평균 정제마진은 배럴당 12.7달러로 직전달인 7월의 6.6달러보다 2배가량 올랐다. 정유사들은 일반적으로 배럴당 4~5달러의 정제마진을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정제마진인 상승기라는 건 그만큼 석유제품의 수요가 탄탄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석화업계는 최근의 유가 상승이 더없는 악재다. 석화기업은 원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를 원료로 에틸렌 등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한다. 유가가 오르면 나프타 가격도 상승해 원가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원료값이 올라가면 제품값 인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둔화 탓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값싼 중국산 석화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국내 석화기업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수익성 지표를 보면 석화업계의 시름은 한층 더 실감된다. 기초제품인 에틸렌과 원료인 나프타의 가격차를 가리키는 에틸렌 스프레드(마진)가 올해 7월을 기점으로 톤당 150달러 안팎에 계속 머물고 있다. 손익분기점인 톤당 300달러를 한참 밑도는 수치다. 지난 3개월간 나프타 가격은 33% 이상 뛴 반면 에틸렌 가격은 13% 오르는데 그쳤다. 현재의 상황이 계속되면 에틸렌을 생산하는 자체가 손해인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분석도 국제유가가 더이상 치솟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설명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보다 유가가 더 뛰어 일부 예상대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면, 시장 전반의 수요 위축이 나타나고 결국 정유·석화업계 모두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고유가라고 하더라도 원재료와 제품 간의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업황이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며 "적정 유가는 대략 배럴당 70~80달러 선인데, 그 선을 넘어가면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100달러를 넘게 되면 수요가 둔화되기 시작한다. 결국 판매량이 줄고 정제마진도 악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