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자료사진. 연합뉴스◇정다운> 20명을 연쇄 살해한 유영철이 최근 대구교도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됐죠. 서울구치소에는 국내에 몇 개 없는 사형장이 있는데다가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형집행 시설 점검을 지시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는 건지 관심이 크게 쏠렸었습니다. 가능한 이야기인지 권영철 대기자와 이야기 나눠보죠.
유영철을 비롯해서 연쇄살인범들이 서울구치소로 이감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거든요. 25년 만에 정말 사형 집행을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건가요?
◆권영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형 집행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그렇지만 집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겁니다.
◇정다운>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건 집행 가능성이 있다는 얘긴가요?
◆권영철> 그런 관측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한동훈 장관이 사형 집행시설 점검을 지시한 사실이 공개됐지 않습니까? 추가로 취재를 해보니 서울구치소의 사형집행 시설을 보수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사형장 시설을 점검하고 청소하고 그런 수준이 아니라 한동훈 장관의 표현대로 폐허 수준이던 걸 가동이 가능하도록 수리했다는 겁니다. 교정당국의 예산이 넉넉한 사정이 아닌데도 사형집행 시설을 수리까지 했다는 건 아무래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교정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사형집행을 할 분위기' 라는 말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정다운> 그런데 사형을 실제 집행하지 않더라도 통상적인 시설 보수 점검은 하지 않나요?
◆권영철> 시설이 있으면, 유지하고 관리하고, 수리하는 건 통상의 업무인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교도관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금기가 있어왔습니다.
기관장이 새로 부임할 경우 초도순시라고 해서 구치소나 교도소 시설을 둘러보는데 사형장은 기피해 왔습니다. 새로 부임한 기관장이 사형장을 둘러보고 수리를 지시하거나 청소를 시키거나 그러면 사형수들이 동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전 법무장관들도 구치소나 교도소를 방문할 경우 사형장은 둘러보지 않는 게 관례였습니다.
한동훈 장관의 말 들어보시죠.
"기존과 달라진 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형이 법에 있고, 정부는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시설을 유지하고 사형 확정자들의 수형 행태를 국민들께서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질서 있게 유지하는 것은 법무부의 임무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료사진. 윤창원 기자◇정다운> 구치소 내 사형수들도 기류의 변화를 느낄 것 같은데요, 분위기가 어떤지 취재 해보셨나요?
◆권영철> 교정당국자들이나 변호인을 통해 사형수들의 분위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서울구치소는 분위기 완전히 아주 얼어붙은 듯이 조용하다고 합니다. 20명을 연쇄 살해한 유영철과 강원도 삼척에서 신혼부부를 엽총으로 쏴서 살해한 정형구가 대구교도소에서 이감돼 오면서 사형수가 16명에서 1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서울구치소에는 아내와 장모 등 10명을 살해한 강호순, 여성과 노인 9명을 살해한 정두영 등 다른 연쇄 살인범 사형수들도 수용돼 있습니다.
최근 사형 집행 문제가 부각되면서 구치소 안에서 일어나던 폭행이나 소란행위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사회에서 흉악범이 나오거나 사형 문제가 부각되면 사형수들이 조용해진다고 합니다. 이러다 정말 집행하는 건 아닐지 불안해하기도 하고요.
◇정다운> 그렇다면 유영철을 서울구치소로 이감한 이유는 뭐라고 설명하나요?
◆권영철> 교정당국에서는 "교정 행정상 필요에 의해서 옮긴 것"이지, 사형 집행 때문에 옮긴 건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대구교도소는 곧 이전할 예정인데 신축한 시설에는 사형집행장이 설치되지 않는 건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영철은 처음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가 여러 차례 사고를 치면서 대구교도소로 이감이 됐고, 대구교도소에서도 여러 번 사고를 쳤다고 합니다.
사형수들의 경우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종종 이감을 하는데, 구치소는 미결수들이 수감돼 있어서 작업시설이 없습니다. 사형수들의 경우 모범 수형자의 경우 작업을 하도록 허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방으로 이감을 하고, 사고를 치는 사형수들은 서울구치소로 이감하기도 합니다. 유영철, 강호순 같은 흉악범들은 작업을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다운> 사실 우리 정부가 결단한다고 해도 사형 집행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잖아요. 단순히 국내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권영철> 그렇습니다. 이미 25년 넘게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지난 7월 국회 법사위에서 조정훈 의원의 질의와 한동훈 장관의 답변 들어보시죠.
조정훈 의원 "실질적 사형금지 국가인데 이걸 지키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한동훈 장관 "사형제는 굉장히 여러 가지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지요.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고 이게 외교적인 문제도 굉장히 강력합니다. 사실 만약에 사형을 집행하게 되면 EU와의 외교 관계가 심각하게 단절 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한 장관은 이어 "이 문제에 대해서 가부를 명확하게 말씀드릴 문제가 아니라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그렇기 때문에 1997년 이래 사형 집행을 하고 있지 않은 면이 있는 거지요.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정다운> 그런데도 사형을 집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권영철> 교정 행정의 입장에서 보면 사형을 집행할 가능성이 1%도 안 됩니다.
전현직 교정 고위당국자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사형을 집행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거나 매우 희박하다고 말합니다. 가능성이 1%도 안 된다고 합니다.
물론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현실적으로 사형을 집행해본 경험자도 없고, 실제로 집행하려는 교도관도 찾아보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교정 행정의 입장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단의 문제로 넓혀서보면 사형집행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정다운> 어떻게 달라진다는 건가요?
◆권영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는 사형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내 경선과정에서 홍준표 후보가 신림역, 서현역 사건을 언급하면서 "흉악범에 한해서는 우리도 반드시 법대로 사형집행을 하자"고 주장하자 '두테르테식'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흉악범에 대한 국민의 분노에 공감하는 것은 정치인의 도리가 맞다. 그러나 대통령에 도전하는 사람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여론에 편승해 사형을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한 언행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입장이라면 사형 집행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흉악범죄에 대한 강경드라이브를 걸 경우 사형 집행이라는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관측이 나오는 겁니다.
◇정다운>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을 집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권영철> 그런 관측을 하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잇따른 강력범죄가 발생하자 지난 8월 22일 정부 여당이 '묻지마 흉악범죄 대책 마련 당정협의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발표된 대책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추진하고, '흉악범 전담 교도소'를 운영한다는 것과 경찰의 정당범위 기준을 완화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은 이미 도심에 장갑차와 특공대까지 배치했고요. 윤희근 경찰청장은 흉기난동 범죄에 대해서는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강경드라이브 대책을 강구하다보면 사형 집행을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가 미국과 일본에 치우쳐 있지 않습니까? 공교롭게도 선진국 중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자료사진. 연합뉴스◇정다운> 지금 우리 정부가 미국·일본과 굉장히 거리를 좁히려 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사형 집행까지 따라 할까요?
◆권영철> 그래서는 안 되겠죠.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만, 정치권의 판단은 상식과 다를 때가 많지 않습니까? 내년 총선까지 정부나 여당에서 내놓을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이후 검찰의 시간이었습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소환 영장청구 여부가 쟁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더이상 카드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래서 국면전환을 위해 사형 집행 카드를 꺼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는 겁니다.
윤 전 대통령을 잘 아는 법조인 중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 집행을 선택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정다운> 25년 넘게 사형 집행이 없다보니 사형 선고도 거의 없는데, 최근 1심이지만 사형선고가 있었지 않습니까?
◆권영철> 지난 8월 24일 창원지법에서 사형선고가 있었습니다.
동거녀를 살해한 사건인데요, 이 60대 남성은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시원하게 사형을 한번 딱 내려달라"고 했고,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손뼉을 치면서 "검사 놈아, 시원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재판에 앞서 "검사가 사형 선고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건데 재판장이 검사 소원 한번 들어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문서를 재판부에 내기도 했답니다.
한 장관이 사형장 시설 점검과 사형수들의 수형 형태를 점검하라고 지시한 이유도 이 남성의 반성 없는 형태와 무관하지 않은 걸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언론에서는 사형 내려 달라더니 막상 선고하자 불복해 항소했다는 보도가 많았습니다만, 형사소송법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가 선고된 판결에 대하여는 상소의 포기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동으로 항소나 상고가 이뤄지는 겁니다.
사형제 문제는 헌법재판소에서도 세 번째 위헌여부를 심판하고 있어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할 경우 사형 집행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추진하고 있지만 입법과정에서 논란이 일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