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한국은 아직 사형제도 존치국가다. 1997년 12월 이후 27년째 집행되지 않았을 뿐이다. 2016년 이후 사형 확정 판결도 없다.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사형제도는 몇 가지 조건이 선행하면 언제든 다시 작동할 수 있다. 최근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 등 흉악 범죄가 연달아 터지자 '사형제도 부활' 목소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부도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법무부는 지난 8월 사형 집행 시설을 점검하더니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서울구치소로 이감했다. 유영철, 강호순, 정두영 등 연쇄살인 사형수 3명이 있는 서울구치소는 전국 교정시설 중 제대로 된 사형 집행 시설을 갖춘 사실상 유일한 곳이다.
5일 CBS노컷뉴스는 35년째 사형제 폐지 운동을 이끌고 있는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사폐협) 회장 이상혁 변호사(88·고등고시 10회)가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대법원, 헌법재판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에게 보낸 '사형폐지 촉구' 성명서를 입수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을 "구순을 앞둔 노(老)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1975년 전남 광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17명을 연쇄살인한 김대두의 변호를 맡으면서 사형폐지운동에 눈을 떴다. 이후 1989년 문장식 목사와 함께 사폐협을 결성한 뒤 재소자 교화 및 사형폐지 운동을 펼쳐왔다.
이 변호사는 성명에서 "작금의 사정을 살펴보면 국가와 사회가 사형집행을 언제라도 재개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사형집행 반대와 사형폐지를 위한 진일보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어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시민사회가 불안으로 요동치는 현실은 저 역시 걱정과 근심이 더해간다"면서도 "사후적인 형벌의 집행, 본보기를 보이는 극형의 연출로는 결코 문제의 근원에 다가설 수 없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서 사회 범죄가 증가한다는 가설도 검증되지 않은 허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형제도를 사회 안전을 유지하는 즉효 방책처럼 사회와 국민을 향해 선전·홍보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기본가치에 역행한다"며 "사형 집행장을 정비하고 곧 집행할 것처럼 분위기를 조장하는 행동은 이성적 국민을 무시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강조했다.
박종민 기자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게 "한동훈 장관이 계획하는 일련의 절차를 당장 그만두도록 지시해야 한다. 피해자의 인권을 사형집행으로 대신하려는 처사는 결코 대한민국 위상과 체면에 합당하지 않은 경솔한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한 장관에게는 "법무 장관은 사형 집행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형제 역사적 배경과 현실을 점검하고 사형제 폐지와 대안으로 종신형이 그 자리를 대체하도록 형벌제도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 번째 사형제도 위헌 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에도 "조속히 사형제 헌법재판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변호사는 "2019년 청구한 이 사건을 4년간 결론 내리지 못하는 고충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법리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건의 결정을 미루는 것은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법치주의 실현 등 헌재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대법원에도 "사형의 선고가 우선하지 않도록 지금껏 공들여 쌓아온 금자탑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상고심의 권위 있는 판결을 계속 유지해 달라"고 했다. 그는 국회 법사위에 "2021년 10월 7일 '사형폐지법안'이 제안됐고 하루 뒤 소관 상임위에 회부됐다"며 "곧 21대 국회도 종료될 것이다. 국회가 종료하는 날 회기 만료로 인해 법안이 폐기되는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힘주어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헌법이 규정하는 인간 존엄을 명확하게 실현하고 보장하는 인권 존중, 생명 존중의 문명화한 국가로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지름길은 사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에 도래할 것"이라면서 "그 위대한 여정에 대통령과 국회 법사위, 대법원, 헌재 구성원 모두의 공헌이 남겨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