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강릉소방서 제공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아이가 사망한 가운데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 재판이 핵심 감정 절차를 모두 마치고 5개월 만에 재개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일 법조계와 유족 등에 따르면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는 오는 28일 차량 운전자 A(60대)씨와 그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약 7억6천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사건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지난 5월 첫 변론기일과 6월 감정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세 번째 재판 기일이다.
앞서 A씨와 가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사고기록장치(EDR) 감정과 음향분석 감정을 신청했다. 이를 받아 들인 재판부는 사설 전문기관을 통해 지난 4개월 동안 정밀 감정을 벌였다.
EDR을 살핀 감정인은 '충돌 5초 전 가속 페달을 최대로 작동시켰다면, 변속장치에 손상이 없었음이 확인됐기에 시속 136㎞가 넘었을 것'이라는 최종 분석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국과수의 '차량 제동장치에서 제동 불능을 유발할만한 기계적 결함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차량 운전자가 제동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과 상반되는 부분이다.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된 A씨가 지난 3월 20일 사고 후 첫 조사를 위해 경찰에 출석했다. 전영래 기자또한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했을 당시를 두고 국과수는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주행(D)→중립(N), 추돌 직전 N→D로 조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음향분석 감정인은 변속레버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점을 들어 '변속레버 조작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감정 결과만 놓고 보면 그동안 EDR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속레버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원고 측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경찰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했던 A씨에 대해 지난달 10일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없음'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경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실제 엔진을 구동해 검사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보고, A씨의 과실에 의한 사고임을 뒷받침할 자료로 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급발진 의심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과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 전영래 기자특히 급발진 의심 사고 형사사건에서 전문 증거로 활용된 경찰이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채택하지 않고, 불송치 결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만큼 앞으로 재판 결과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책임 소재를 가릴 핵심 감정이 모두 끝나면서 이르면 내년 2월 법관 정기인사 전 1심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해 12월 6일 오후 4시쯤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A씨가 몰던 SUV 승용차가 도로 옆 지하통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해 함께 타고 있던 12살 손자 도현 군이 숨지고, A씨가 다쳤다.
이에 유족들은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시 결함 원인 입증책임 전환 제조물책임법 개정에 관한 청원'을 게시했다. 해당 청원은 국민들의 공감을 사면서 5일 만에 국회 소관위원회 및 관련 위원회 회부에 필요한 5만 명을 넘어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