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출석하는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에서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어민들을 북한으로 보냈다는 '강제북송' 첫 재판에서 양측이 북한 주민을 국민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대립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허경무·김정곤·김미경 부장판사)는 1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양측은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는지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검찰은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이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북한에 보내는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탈북 어민들은 2일부터 3일 사이 네 번이나 귀순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냉각기에 접어든 당시 정부로서는 어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북송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낫다는 판단을 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법무비서관실의 초기 보고와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
검찰은 "북한 이탈주민은 헌법상 국민이고 난민법 적용이 불가하다, 남북 사이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송환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초기 보고였다"고 밝혔다.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당시 탈북어민 북송 현장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같은 달 4일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회의에는 "진정한 귀순으로 보기 어렵다, 살인범을 보호할 가치가 없다, 보호하면 (여론으로부터) 비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의도적으로 수정한 보고서가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탈북 어민들이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북한에 인도할 법적 근거는 마땅치 않았지만, 정부 입맛에 맞게끔 보고서가 수정됐다는 것이다.
반면 피고인 측에서는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라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사항이지만, 그 주민들의 지위는 '이중적'이라는 취지로 반박에 나섰다.
정 전 실장 측 변호인은 "탈북 어민들은 북한 국적이지만 잠재적 한국 국민"이고, 입법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제북송' 사건은 "무단으로 월선한 이들을 우리 해군이 제압해 나포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정 전 실장은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이번 사건은 북한에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후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해 무단으로 월선한 이들을 우리 해군이 제압해 나포한 것"이라며 "정부에선 이들을 사법 절차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들의 귀국을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 전 원장도 "정 전 실장과 의견을 같이한다"며 "북송 결정이 위법이라는 전제 아래서 이뤄진 공소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 전 실장은 "11월 4일 비서실장 주재 회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티타임이다"라며 "이 사건을 위해 특별히 만든 회의가 아니고 365일 매일하는 티타임"이라고 말했다.
실무자급인 비서관들이 참석하는 회의로, 검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 고위급 안보라인이 모여 강제 북송하기로 결정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 전 실장 등은 2019년 11월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내도록 공무원들에게 의무없는 일을 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탈북 어민 2명은 같은 해 11월 2일 동해NLL(북방한계선)을 넘어왔고, 4일 노영민 전 비서실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강제 북송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 이 과정에서 정 전 실장은 안보라인 컨트롤타워로써 강제 북송 결정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서 전 원장에 대해서는 합동조사팀조사결과 보고서에서 탈북민들 귀순요청 사실을 삭제하는 등 허위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도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