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이틀간 경고파업에 돌입한 9일 오전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 전광판에 관련 안내문이 나오고 있다. 노조는 전날 임금·단체협약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이날 오전 9시부터 오는 10일 야간근무 전까지 파업에 돌입했다. 황진환 기자서울 지하철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멈춰섰다. 지난해 11월 30일에는 하루 만에 파업이 끝났지만 파업 첫날 공교롭게도 한파가 몰아닥쳐 지하철로 몰려든 시민들은 퇴근길 지옥철을 겪어야만 했다.
올해도 파업 첫 날인 9일 퇴근길 지하철 운행률은 87%로 떨어져 시민 불편이 이어졌다. 경고파업이 끝나는 10일 오후 6시면 퇴근길은 안정을 찾겠지만, 노사 교섭은 아직 마무리가 안됐다. 노조는 사측의 전향적 입장변화가 없다면 오는 16일 대학수학능력평가 이후 2차 전면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그리고 경고파업이 끝나는 10일 이후에도 지하철이 다시금 멈춰 설 수 있다는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아니 지하철은 앞으로 더 자주 멈춰서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대규모 적자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총파업 출정식. 연합뉴스15년 전에도 '경영효율화'
시계는 오세훈 1기 시정 당시 2008년으로 돌아간다. 지금은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된, 당시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메트로는 당시에도 이미 5조원을 넘긴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창의혁신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2010년까지 정원의 20%인 2088명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이었다.
주된 방식은 민간위탁 형태의 '분사'. 고령 직원을 위탁업무 회사로 전직시켜 인력을 감축하고, 공사의 업무도 위탁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이었다. 2008년 1만284명이던 직원은 9880명으로 줄었고, 이 과정에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전동차 경정비, 궤도보수 등 안전관련 업무들도 외주로 떨어져나갔다.
그로부터 8년 뒤인 2016년 5월, 구의역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로 숨진 김군은 19살,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위탁받은 은성PSD 소속 직원이었다. 2인 1조 업무원칙도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홀로 수리에 나섰던 김군은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유명을 달리했다.
서울시청 앞 서울도서관 3층 한 켠에는 지금도 구의역 사고 기억공간이 설치돼 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시민들의 안타까움이 묻은 포스트잇들은 이제는 디지털로 구현되지만 여전히 절절하다.
서울도서관 3층에 마련된 구의역 사고 기억공간. 장규석 기자구의역 사고 직후 '안전의 외주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가 직영으로 전환됐다. 2018년에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128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식당조리원과 목욕탕 관리사, 이발사 등의 후생지원 인력까지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또 감사원이 정규직 전환 직원 중 192명이 기존 재직자의 친인척이라는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대규모 정규직 전환의 그늘이었다.
대규모 정규직 전환의 그늘
이와함께 지하철 요금이 2015년 이후 8년 동안 동결되고,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무임승차로 인한 비용부담도 급상승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터져 승객이 급감하면서 그렇지않아도 감당불가였던 지하철 운영적자는 올해 누적적자가 18조4천억원까지 불어났다. 1년 당기순손실은 서울시 지원금을 포함해도 7800억원에 달해,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적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판단한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다시금 '경영혁신 추진계획'이라는 이름의 구조조정안을 들고 나왔다. 2026년까지 정원의 13.5%, 2212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퇴직인원이 발생하면 채용을 하지 않고 정원을 자연 조정하고, 비핵심업무는 자회사에 위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업대비 비상대책회의 모습. 서울교통공사 제공 식당조리원이나 목욕탕 관리사, 이발사 등 후생지원 인력은 물론 특수차, 기계장비 관리, 구내운전 등의 업무가 자회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궤도유지보수와 전동차 냉방기 정비·도장 업무 등도 민간업체 위탁대상으로 분류됐다.
효율과 안전 사이
노조는 2008년 때와 마찬가지로 외주화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조직에서 열 명 중 한 명 이상을 빼내면 어떤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구의역 사고의 재발 우려는 물론이거니와 역사 근무자 감소로 지하철역 난동 사건 등에도 대응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노조는 우려한다.
아울러 정부와 서울시의 교통복지정책, 노인 무임승차, 요금동결 등으로 발생한 대규모 적자를 왜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냐고 반발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울시나 서울교통공사도 절박하다. 노조 간부 311명이 근로시간 면제, 즉 타임오프 제도를 악용해 출근하지 않는 사례가 적발됐다는 감사 결과까지 공개하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노조가 현장 근무 인력부족 사태의 책임이 있는데 자구노력 없이 인력 채용만 요구하고 있다는 논리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사측은 실무교섭 과정에서 작성된 합의안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강경 태도로 돌아섰다. 신규 채용계획도 전면 보류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안전과 효율의 딜레마. 지하철의 고질적인 적자와 구조조정, 그리고 안전과의 줄다리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지하철 파업은 끝나지만 끝난게 아니다. 적자는 오늘도 불어나고 있고 노사 갈등은 더 깊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지하철은 앞으로 더 자주 멈춰서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