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마트 채소 코너를 살펴보고 있다. 박종민 기자최근 장바구니 물가가 급격히 오르며 가계에 큰 부담이 되자 정부는 식품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그러자 가격은 유지한 채 제품 용량을 줄이는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꼼수 인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2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이달 초부터 편의점용 냉동 간편식품 '숯불향 바베큐바' 중량을 280g에서 230g으로 줄여 납품하고 있다. 봉지당 5600원으로 같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지만 g당 가격이 20원에서 24.3원으로 오르면서 결국 21% 가격 상승 효과가 발생했다.
국내 조미 김 업계 1위인 동원F&B는 지난달부터 '양반김' 중량을 5g에서 4.5g으로 0.5g 줄여 소매점에 공급하고 있다. 봉지당 가격은 700원으로 유지한 채 중량만 낮춘 것이다.
해태제과는 지난 7월 '고향만두'의 경우 용량을 기존 415g에서 378g으로, '고향 김치만두' 용량은450g에서 378g으로 각각 줄였다. 역시 가격은 그대로였다.
롯데칠성음료는 같은 달 델몬트 오렌지·포도 주스의 과즙 함량을 기존 100%에서 80%로 낮췄으며 OB맥주는 지난 4월 카스 맥주 묶음 팩(번들) 제품의 캔당 용량을 375㎖에서 370㎖로 5㎖ 줄였다.
4개로 줄어든 풀무원 핫도그. 연합뉴스 풀무원은 앞서 지난 3월부터 '탱글뽀득 핫도그'의 봉지당 개수를 5개입에서 4개입으로 바꾸었다.
이 밖에 롯데웰푸드 카스타드, 농심 양파링과 오징어집, 하리보 젤리 등이 지난해와 올해 용량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업계들이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것을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라 부른다.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영국의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만들었으며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기법이다.
식품업체는 밀가루와 설탕 같은 원자재는 물론 물류비와 에너지 가격까지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물가 억제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데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주장이다.
현행 소비자보호법상 슈링크플레이션은 불법이 아니다. 제품 용량을 줄여도 포장 표시와 용량이 같다면 문제가 없고 이를 소비자에게 알릴 의무도 없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고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브라질에서는 변경 전과 후의 용량, 용량 감소 비율을 포장에 표시해야 하며 프랑스는 용량을 변경할 때 소비자에게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이 현행 법상 불법적인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물가 부담이 있는데다 마치 가격 인상이 없던 것처럼 기만하는 측면도 있어 이를 '꼼수인상'으로 보고 대응하고 있다.
이에 업계의 사례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실질적 물가 상승에 대한 소비자의 부담과 우려를 업계에 지속적으로 전달해 자제를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가 직접 나설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비자단체의 물가 감시 기능을 강화해 억제해 나간다는 방안이다.
권재한 농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은 "소비자단체는 물가 감시기능이 중요 포인트 중 하나"라며 "이런 분야에 대한 소비자단체 감시기능이 좀 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인 까르푸는 지난 9월,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며 26개 제품에 '슈링크플레이션' 경고 딱지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