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 보궐선거 패배 여파로 세워진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이른 마침표를 찍은 데엔 약속한 '전권'을 주지 못한 지도부의 혁신 의지 부족과, 당내 주류 인사들을 향한 혁신위의 섣부른 '용퇴' 요구 등 거듭된 오발탄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간 혁신위가 만들어내는 혁신 제안들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주목했던 당내에선 총선 위기론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7일 혁신위는 출범 42일 만에 조기 종료를 선언했다. 오는 24일 활동 기한 만료를 한참이나 앞둔 시점이지만, 사실상 이미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의 발표였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전체회의가 끝난 뒤 "우리는 50%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50%는 당에 맡기고 기대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인 위원장은 김기현 대표를 향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도 "혁신위원장을 맡는 기회를 주시고, 정치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많이 배우고 나간다"며 뼈가 있는 말을 남겼다.
'찜찜한 작별 인사' 직후 인 위원장은 같은 당 안철수 의원과 '깜짝 회동'을 가진 뒤 "많은 사람이 저와 혁신위원에게 기대가 컸는데 이에 미치지 못한 데 송구하다"며 이같은 내홍 기류에 한층 더 힘을 싣기도 했다.
안 의원은 이 자리에서 아예 "혁신은 실패했다고 본다. 저도 인 위원장님께서도 치료법을 각각 제안했지만 환자가 치료를 거부한 것"이라며 "김 대표와 지도부가 어떤 방향으로 민심을 회복하고 총선 승리를 이끌어낼 건지, 혁신위의 희생에 답을 내놓을 차례"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왼쪽)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6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지도부와 혁신위 사이 갈등에서 당내 여론이 엇갈리고 있는 셈인데, 그 원인을 따지는 목소리 역시 여러 갈래다.
당초 김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전권 부여'를 약속했지만, 주류 용퇴 등 주요 혁신안이 제시될 때마다 당 공천관리위원회에 공을 넘기면서 이같은 약속이 공허했다는 비판이 결정적이다. 또, 혁신위는 이처럼 굵직한 혁신안을 당내 논의도 없이 이르게 제시하면서 공감대를 얻지 못한 데다, 인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직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논란이 일었던 것도 뼈아픈 점으로 꼽힌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의원은 "보궐선거에서 지고 지도부 교체 대신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게 혁신위였는데, 전권을 준다고 해놓고 이런 마무리를 짓는 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다"라며 "애초에 혁신안이 대단히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미 회자되던,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시나리오였다. 근데 그걸 오죽 떠넘겼으면 공관위원장 자리까지 달라고 했겠나"라고 지적했다.
반면 당내 한 관계자는 "당 지도부, 중진 등에게 불출마, 험지행을 요구한 건 시기상 '떠밀린 선택'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데 대체 누가 여기에 동의할 수 있겠나. 총선 전략공천 원천 배제는 새로운 인재를 키우는 데 있어 현실적이지도 않다"며 "혁신위가 미숙했다"고 말했다.
지지율 답보 상태에서 그간 '인요한표 혁신'이 여론의 시선을 끌었던 만큼, 이에 희망을 걸어온 당내에선 비판론과 총선 위기론이 맞물려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당 소속의 또 다른 의원은 "혁신위가 결국 조기 해체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이 과정에서 김 대표가 주도권을 갖고 치고 나온 모양새도 아니었다"며 "이래선 안 된다.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 같이 총선에서 따뜻하게 죽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혁신위는 오는 11일 당 최고위원회에 혁신안을 보고하고, 백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활동을 끝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