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가 해외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고 했던 미국 시버트 증권사 인수가 무산됐다. 카카오페이 대주주인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으면서다. 금융업의 특성상 대주주 적격성 여부를 엄격히 따지기 때문에 향후 국내외 할 것 없이 카카오 금융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페이는 20일 공시를 통해 시버트 인수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4월 시버트의 지분 51.0%를 두 차례에 걸쳐 약 1039억원에 취득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1차 거래는 5월에 이뤄졌다. 시버트의 지분 19.9%를 확보했다. 내년 중 2차 거래를 통해 나머지 지분 인수를 완료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시버트는 55년 이상의 업력을 보유한 미국 소재의 금융사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카카오페이는 시버트를 해외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고 했다. 국내 사용자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동남아 등 해외 핀테크 기업에 금융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수출해 수익모델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그러나 카카오 그룹 경영진이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사법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상황은 급변했다. 시버트는 지난달 카카오에 서신을 보냈다. "2차 거래를 종결하지 어려운 '중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했다고 판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시버트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 자료를 통해 '중대한 부정적 영향'에 대해 한국 당국이 카카오페이의 모기업 카카오에 '조치를 하는(taking action)' 상황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페이는 바로 시버트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답변서를 시버트에 제출했지만, 결국 시버트 인수 작업은 멈춰섰다.
황진환 기자 카카오의 사법리스크가 계열사 사업에 직접적으로 지장을 준 첫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카카오의 사법리스크가 경영진 공백으로 인한 의사 결정 리스크 등 간접적 형태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카카오의 '비욘드 코리아(Beyond Korea)' 계획도 변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지난해 3월 업무의 중심을 '글로벌 확장'으로 이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카카오의 미래 10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운 게 '비욘드 코리아'다. 20% 수준인 해외 사업의 매출 비중을 2025년까지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카카오에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가져다 준 SM엔터테인먼트 인수도 이같은 전략의 연장선상이다.
사법리스크를 해결하지 않는 한 카카오 금융 사업은 향후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 사업의 특성상 대주주 적격성 검사가 깐깐해서다. 해외 뿐 아니라 국내도 마찬가지다. 현재 카카오는 경영진 뿐 아니라 법인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황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기존에 보유한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 지위도 자칫 내려놔야 할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카카오의 사법리스크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카카오의 금융 사업은 국내외 모두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비금융쪽은 M&A(인수합병) 과정에서 대주주 적격성이 크게 부각이 안 돼 비교적 수월할 수는 있지만, 카카오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리스크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면서 "내부 통제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성장을 추구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현재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유럽 최대 차량 호출·택시 플랫폼 '프리나우'(FreeNow)의 인수를 추진 중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두 달 간 프리나우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으며 연내 지분 약 80% 인수를 목표로 예비 입찰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카카오페이의 시버트 경영권 인수 결렬과 같은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