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다. 윤창원 기자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최근 불거진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의 문제에 대해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질책을 받았다"며 "발간에 대한 최종 결심은 제가 했으니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고 사과드리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잘못을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게다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서술한 오류 자체도 큰 문제이지만, 이번 교재의 문제점은 그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이념 편향적인 대목들이 사안의 본질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가 초지일관 편향적 관점을 수정하지 않으면서 뼈 아픈 독도 문제만 사과하는 것은 본질을 비껴갔다는 지적이 불가피해 보인다.
신 장관은 28일 열린 국방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독도를 국제분쟁화하려는 일본에게 우리가 말려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인데, 그런 기술(영토분쟁)을 한 데 대해 (윤 대통령이) 어이없어 했고, 저도 할 말이 별로 없었다"며 "꼼꼼히 살펴야 하는데 발간될 때 살피지 못한 것을 사과드렸고, 바로 전량 회수하겠다고 보고드렸다"고 말했다.
'꼼꼼히 살피지 못했다'지만 '꼼꼼히 적은' 내용들은 있다. 이념 편향성이 짙은 부분이다. 70페이지에는 "평화를 구걸하거나 말로 하는 평화, 즉 가짜 평화에 기댔던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며 전임 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신 장관 본인도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완벽한 가짜' '사기극'이라고 비판하는 등 최근 국방부는 정치적 편향성이 짙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83페이지에는 '내부 위협세력'을 언급하며 "북한의 대남적화 획책에 따라 우리 내부에서 대한민국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3대 세습 정권과 최악의 인권유린 실태, 극심한 경제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국방부는 "이러한 세력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것은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면서 "이를 부정하고 방관하는 것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재에 대한 비판을 '이적행위'로 취급하는 듯한 뉘앙스까지 드러냈다.
전하규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건전한 진보진영을 우리 군이 마치 내부의 위협세력으로 언급한 것처럼 인식하는 게 우려스럽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긴 했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크다.
신 장관은 "발간사는 제가 다시 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뭔가를 바꾸라고 하진 않았다. 집에서 책을 읽어 보긴 했지만 꼼꼼히는 못 봤다"고 말했다. 맥락상 꼼꼼히 읽지 않았다는 주장이지만, 교재에는 국방부의 이념적인 기조가 자세히 적혀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으로 읽힌다.
또 교재 83페이지에 12.12 군사반란 등 군부 독재정권의 잘못을 '일부 과오'로 축소 기술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과오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으며, 군인정신을 다룬 항목에서도 '상관에 대한 충성'과 규율·기강이 강조된 반면 기존의 명령과 복종의 한계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나중에 해명하긴 했지만 신 장관은 중장 퇴역 후 민간인 시절이던 2019년 한 유튜브 방송에서 12.12 군사반란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공백기에 나라를 구해야겠다고 나왔다고 본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러면서 내놓은 답변이 "지금은 쿠데타가 불가능하며, 대한민국에서 쿠데타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는 걸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12.12에 대해선 "12.12 군사반란에 대해 대법원 판결과 정부의 공식입장을 지지한다.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갑작스레 태도를 바꿨다.
더군다나 신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문제를 처음 꺼낸 당사자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해 "자유시 참변과 1927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스탈린 체제의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1921년 이후 행적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논란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자유시 참변 개입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평이 다수다.
신 장관은 이 교재 이전에도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국방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불러오게 만든 당사자라는 점에서 관련 책임이 작지 않다. 신 장관 내정 전이긴 하지만 8월 29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한 취재진은 "국민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국방부발로 이렇게 국가안보(에)도 도움이 안 되고, 국민 통합에 도움 안 되는 기사들이 지금 한 달 넘게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참 안타깝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국방부 제공대통령실도 이 교재와 관련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애시당초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지난 8월 홍범도 장군 논란 당시 국민의힘 연찬회를 찾아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며 부추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념 논쟁에 대해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뒤인 10월 18일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해선 안 된다"며 "이념 논쟁을 통해 자유와 연대를 바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삶"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교재 집필은 지난해 하반기 관련 TF가 이미 구성됐고 올 1월 집필을 시작, 2차례 감수를 거쳐 8월 말에는 인쇄할 수 있는 준비까지 마무리된 상태였다. 윤 대통령이 이념 논쟁과 관련해 언급하기 전에 서술됐던 셈이다.
더욱이 신 장관은 독도 관련 논란이 불거진 뒤 고개를 숙인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도 "주적 개념이나 큰 골자는 그대로 하겠다"고 발언해, 이러한 실수가 나오게 된 원인으로 지목받는 '이념 편향성'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그대로 드러냈다.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이나 변화가 과연 있을지 의문을 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