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세워진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유세차량에 윤 대통령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연합뉴스'12·3 내란사태'를 일으켜 수사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 측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2차 출석요구에 불응할 뜻을 밝히면서 성탄절 조사가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한동안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불응할 것으로 관측되는 데다 '수사보다 탄핵심판 대응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에 나설지 관심이 모아진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까지 출석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라는 공수처의 요청에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성탄절 조사 가능성을 묻자 "내일 출석은 어려울 것 같다"며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보다 탄핵심판 대응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수사기관에서 피조사자는 수사관이 묻는 말에 답하는 구조로 말할 수밖에 없다. 반면 헌법재판 절차에서는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공방 형태로 충분히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녹화방식으로 중계되는 탄핵심판 절차에서는 비상계엄이란 선택에 이르게 된 과정 등을 윤 대통령이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는 이점을 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측은 26일 이후 변호인단·대리인단을 통해 향후 수사 및 탄핵 절차에 임할 계획 등을 공개할 방침이라고 한다. 석 변호사는 "중대발표라고 오해하진 말아달라"며 "시의성 있게 입장을 들려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진환 기자윤 대통령이 2차 출석 요구서에 끝내 불응한다면, 공수처의 선택지는 사실상 두 가지다. 하나는 체포영장을 청구해 윤 대통령을 조사실로 끌고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 번째 소환장을 보내는 방법이다.
통상 수사 기관은 피의자가 세 차례 출석요구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조사를 진행한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체포영장을 청구할 법적 요건은 충족됐다고 본다. 앞서 검찰의 소환 요구까지 더하면 윤 대통령이 세 번의 수사기관 소환 통보에 불응한 모양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공수처가 인편과 전자공문, 우편 등으로 보낸 출석요구서를 '수취거부'나 '수취인불명' 등을 이유로 수령조차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측이 공개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기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 준비를 우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공수처로선 체포영장 청구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석 변호사는 공수처의 성탄절 조사 불발에 대해 "수사기관이 정한 (출석)날짜에 안 가면 불응이고 거부인가"라며 "(계엄이라는) 사안에 대해 (헌재의 탄핵심판으로) 국민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에서 아직 공수처에 선임계를 낸 변호인은 없다고 한다. 수사기관의 피의자 조사를 받을 기초적인 대비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심판 절차 준비를 이유로 수사기관 출석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버티기'에 들어갈 경우, 공수처로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수사팀이 조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피조사자인 윤 대통령의 의중대로 끌려다니는 모습을 연출하지 않으려면 체포영장 등 강제수사 전환을 통해 수사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수처 안팎에서 나온다.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동운 공수처장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 대통령을 체포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통령께서 정해진 출석 시간(25일 오전 10시)까지 꼭 시간을 내주기를 바라는 입장"이라며 "시간을 좀 더 늘려서라도 기다린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만일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법 절차에 따라 긴급한 사안이고 엄중한 사안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수처가 체포영장 대신 윤 대통령에게 3차 출석 요구를 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직 대통령 신분인 윤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경호처와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만에 하나라도 체포영장이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경우 수사 동력에 적잖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다만, 또다시 출석요구서를 보낼 경우 윤 대통령에 대한 신병 확보 등이 해를 넘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져, '부실 수사' 혹은 '수사력 부족'이란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특별검사(특검) 도입 여부는 변수다. 특검 도입에 속도가 붙는다면, 수사력을 입증할 기회를 잡은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신병 확보 등을 더욱 서두를 수 있고, 윤 대통령 역시 '수사보다 탄핵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수사팀장으로 일하며 직접 칼자루를 휘둘렀던 윤 대통령이 특검 수사의 파급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특검 출범이 가시화할 경우 선제적으로 공수처 출석을 선택할 것이란 분석이다.
서초동의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특검은 수사 범위나 대상이 포괄적이라 대통령과 그 주변을 샅샅이 훑게 된다. 무엇보다 일단 특검이 돌아가면 수사 기간 내내 피의사실 공표에 가까운 브리핑이 매일같이 이어진다"며 "헌재 법정에서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여론전을 펼치려는 대통령 입장에선 수사 내용이 연일 방송과 신문에 오르내리는 일 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