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준 교수가 노컷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결국 밸런스를 찾아갈 겁니다."
웹툰 '보스리턴'의 현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양세준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는 한국 만화·웹툰 산업의 흐름을 한마디로 이렇게 진단했다.
양 교수는 팬데믹 이전과 디지털 콘텐츠 수요가 급증했던 팬데믹 기간, 그리고 지난해부터 본격 엔데믹 시대를 맞으면서 웹툰 시장이 커다란 변곡점을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레진코믹스와 같은 중소 플랫폼과 네이버·카카오 등 메이저 플랫폼이 웹툰 시장을 견인하면서 팬데믹 기간 양적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뤄졌어요. 콘텐츠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서 이른바 양산형 웹툰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검증된 스토리를 활용하는 노블코믹스가 급증했지만 엔데믹 직후 시장이 조정되고 있어요. 스튜디오들이 제작하는 웹툰 퀄리티는 상승했지만 비슷한 장르에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웹툰이 항상 상위를 차지하고 200화, 300화까지 끌고가니 소비자들도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거죠."
양 교수는 웹툰 제작 방식의 메인스트림으로 최근 웹툰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는 데 대해 "카카오 플랫폼이 선호한 방식이기도 하다"며 "한국에서 웹툰이 양적 성장을 이루기 전까지는 한정된 개인 작가나 에이전시와 플랫폼 간 유기적인 소통 방식으로 개성 있는 작품을 공급하는 일본만화식 제작 흐름이었다면, 코로나19 이후 웹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공정별, 직군별 제작을 세분화 하는 미국의 마블코믹스 방식에 수요를 따라가려는 양산형 제작 형태가 도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웹툰 제작 공정의 세분화 추세는 제작 스튜디오 운영 비용, 제작 인건비의 상승을 불러오면서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 폐업하는 스튜디오들이 늘고 있다는 점과 맞물려 있다. 마감에 쫓기고 수많은 작품들과 경쟁해야 하는 개인 작가들 역시 플랫폼 내 고착화된 상위권 작품들은 물론 스튜디오들의 퀄리티 높은 양산형 작품들과 경쟁해야 하는 이중고에 내몰리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개별 인기 작품을 기억하기보다 판타지, 학원물, 좀비물 등 장르로 기억하는 경향이 높았다. 인기 위주의 비슷한 작품이 양산되면서 피로감이 가중돼 웹툰 구독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최근 이 같은 이슈 적체와 과잉 공급을 해소할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AI(인공지능) 큐레이터 기능을 도입해 독자 맞춤형 웹툰을 소개하고 장르 다양화를 통해 편중도를 분산시킨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요일웹툰과 주간연재, 인기순위 등 과거 방식에서 탈피해야 개성있고 창의적인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16년간 한국과 일본에서 현역 작가로 활동하며 최근 학원액션 회귀물 '보스리턴'을 연재 중인 양세준 교수를 노컷뉴스 [만화인]이 만났다.
양세준 교수의 대표작 '보스리턴'과 '서북의 저승사자'. 네이버웹툰 갈무리 "문화예술은 다양성이 특징…작품 편중화는 독자들 외면 불러"
-작가 데뷔가 상당히 이르다. 2007년 대학시절부터 연재를 시작했는데?=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2004~2005년 즈음엔 포털에서 볼거리로 만화 서비스를 막 하던 시기였어요. 웹툰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때였죠. 만화를 워낙 좋아해서 휴학하고 군복무 다녀와서 잠시 쉬는 동안 블로그에 제가 그린 그림을 올렸는데, 조이시티라는 곳에서 2007년 연재 제의를 해왔어요. NBA 농구를 좋아해서 농구 캐릭터 그림을 올렸던 게 조이시티라는 농구게임사 관계자 눈에 띄었나봐요. 지금으로 보면 이걸 데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엉겁결에 연재를 하게 됐죠. 'the HOOPs'라는 농구 만화였습니다.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용돈도 벌고 제 작품도 실전에서 통할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좋은 경험이었죠.
-일본에서 만화를 연재했다고 하는데, 흔한 경력은 아니다.= 농구만화를 2010년 초 완결했는데, 졸업작품전도 같이 겹쳐 그해 연말연초 정말 갈아 넣다시피 작품을 만들다 보니 웹툰 연재도, 졸업작품도 끝나고 허탈감이 찾아왔어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미술과 만화를 선택해야 했는데 만화에 미련이 많이 남더라고요. 당시 국내 웹툰은 여전히 주류시장이 아니었어요. 소년만화를 하고 싶어서 출판사에 여러 번 원고도 내고 공모전에도 참가했는데 계속 떨어지더라고요. 사실 수상작 발표도 하지 않았는데, 워낙 출판만화 시장이 어려워서 그랬던 것도 같아요. 우연히 일본 쪽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출판만화 관계자가 온라인에 올려놓은 제 그림들을 보고 같이 작업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해 왔죠. 일본에서 2014년에 데뷔하고 두 편 정도 연재했습니다. 2013년 레진코믹스가 생기면서 본격 웹툰 시장이 열렸어요. 출판만화에 도전했던 작품도 워낙 많았던 터라 나름 '기성 작가' 타이틀을 가지고 네이버웹툰에 투고를 하게 됐어요. 그게 2015년부터 연재해 2018년 완결한 '서북의 저승사자'입니다. 일본 연재 때와 달리 한국에서는 제 작품으로 독자들과 직접 소통이 가능하니까 너무 행복하고 좋았어요.
웹툰 '보스리턴' 작가인 양세준 교수. 김민수 기자 -홍익대 미대를 졸업했다. 화가가 아니라 만화가가 된 이유가 있나?= 초등학교 때 아이큐점프나 소년챔프 같은 만화로 일본만화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당시엔 초고속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게임도 많지 않았고 슬램덩크나 드래곤볼을 즐겨봤죠. 미술전공한 이모와 어머니가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계셔서 그림에 대해 친숙했던 것 같아요. 또래들에 비해 그림도 잘 그렸고 만화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진학하니까 입시미술하는 애들이 많은 거예요. 배운 그림이 차이가 크구나 깨닫고 미술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탐탁해 하지 않으셨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1등도 하고 성적이 괜찮았는데 당시에도 평판이 좋지 않았던 만화가를 한다니 내키지 않으셨던 거죠. 워낙 제가 단호하니까 그럼 서울대 미대나 홍익대 미대 가면 네 앞가림 할 수 있을 테니 그땐 납득하겠다는 조건을 내거셨어요. 결국 재수까지 해서 홍대 미대에 갔는데 아버지 뜻에 따르기 위해 미대 가는 게 목적이었지 특별히 미술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대학 다니는 내내 만화만 그리고 살았어요.
-일본만화 시스템과 한국만화 시스템에 차이가 있나?= 일본만화 제작의 특성은 작가와 편집자의 2인 3각 체제입니다. 만화 원고를 그리는 동안 끊임없이 편집자와 스토리의 방향성이나 그림에 대한 소통을 하거든요. 그때 제가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물리적 거리가 있고 언어나 문화적 소통에 차이가 있다 보니 온전히 나의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 조금 어렵더라고요. 국내의 경우에는 플랫폼마다 웹툰 PD가 있어요. 과거 작가군이 적었을 때는 조금 달랐겠지만 시장이 커지고 작가도 늘면서 깊이 있는 소통은 잘 없는 편이에요. 대신 작품에 대해 거의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라서 작가가 자신만의 작품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2015년 국내 플랫폼 첫 연재작 '서북의 저승사자'와 이후 연재한 '인간의 온도', '보스리턴'에서 작화 스타일이 달라진 것 같다.= '서북의 저승사자'는 원래 출판만화에 공모했던 작품이에요. 당시 출판만화 문법대로 만들어졌죠. 주로 PC로 작품을 보던 때라 컷이 작고 쪼개져 있고 글밥도 많죠. 연재 후반부 100화를 넘기면서 모바일 환경에 맞는 형태로 변화한 작품입니다.
-웹툰 연재는 물론 강사와 대학 교수, 한국만화가협회 이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북의 저승사자'와 '인간의 온도'를 연재하면서 지인을 통해 와이랩 아카데미와 청강문화산업대 강사 제의가 왔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전인데, 작품 연재와 두 강의가 겹치다보니 다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와이랩은 곧 그만두고 대학 강의를 하게 됐어요. 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 더 젊은 친구들의 생각이나 트렌드가 궁금하더라고요. 실제 이 친구들과 만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너무 즐거운 거예요. 그러다 대학 측에서 정교수 자리를 제안해서 후배들과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만화가협회 신일숙 회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셔서 공석인 이사를 맡아달라고 하시는데, 제가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라 수락했어요. 앞으로 만화인들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웹툰 '보스리턴' 작가인 양세준 교수. 김민수 기자-만화인들에게 최근 가장 핫한 이슈는 생성형 AI(인공지능)다. AI는 동반자인가 위협인가?= 개인적으로 AI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이기도 해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통제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첨예한 부분은 AI의 데이터마이닝 과정에서 기성 콘텐츠에 대한 학습권을 인정할 것인가죠. 미국과 유럽에서도 아직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아 국내 정부·업계 모두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AI 사용은 정말 편리해요. 배경이나 리소스를 작가들도 많이 사용하는 스케치업으로 돌리고 있지만, 3D는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거든요. 이것을 AI가 뚝딱 만들어내면 작업에 능률이 올라가니 희망회로를 돌리는 창작자분들이 많습니다. 한편으론 그런 공정을 쉽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AI가 작가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나 소스를 아무런 조치나 대안 없이 데이터마이닝 학습에 사용하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입니다.
다만, 저희 학교 학생들에게는 거리를 두진 말라고 합니다. 직접 사용해보고 활용해보라고요. 연재 등 상업 작품에 활용 가능한 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지만 스스로 경험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요. 대학 입시에 수험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받아봅니다. 학교에서도 여러 TF를 통해 AI 연구를 하고 있지만 적극 도입은 시기상 아직 위험한 부분이 있거든요. 대세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지금은 불가합니다만 입시생들의 포트폴리오에 AI 활용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고민점이 올 거예요. 생성형 AI 툴을 활용하는 기술은 익히되 이 방식이 옳으냐 틀리냐에 대한 저의 판단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고 유보입니다. 만약 AI가 일반화돼 자동화라는 편의성을 가져다 준다면 결국 양산형 시장이 만들어질 겁니다. 반대로 힘들지만 수작업으로 작품을 그리는 작가들은 작고하신 김정기 만화가님처럼 희소가치성을 통해 자기 브랜드를 가진 작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웹툰 작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지 않나?= 저는 출판만화를 경험한 세대다보니까 직접 배경도 작업하고 했지만 지금은 스케치업 프로그램이나 3D를 이용해 자동화 하는 배경 작업이 일반적이에요. 그렇다 보니 배경 작업에 필요한 공간 투시도법을 학습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요. 프로그램으로 돌려도 가능하니까요. 트렌드가 바뀌니 수업 커리큘럼도 굉장히 자주 바뀌는 편이에요. 매년 저희 학과에 200명씩 뽑는데 사고방식이나 관심분야도 정말 다양하고, 시장도 시시각각 바뀌면 학생들에게 유연하게 필요한 학습을 제공해야 해요. 한편으로는 실용적이면서도 학문적인 것보다 시장에 맞는 고급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효율성으로 기우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만화인이 될 것인가, 제작사의 부품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따르죠.
-최근에는 자신의 오리지널 작품을 그리는 작가뿐 아니라 분업 작가도 선호한다고 하는데?= 만화가는 원래 오리지널 작품을 그리고 싶어하죠. 그런데 시장이 커지고 규모의 경제가 확보되고 다양한 분야로 작업방식이 세분화되면서 협업 작가 또는 보조작가를 선호하는 학생들도 늘어나는 추세죠. 아무래도 제도적으로 작가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나 원고료 수준이 높아지면서 웹툰 스튜디오에 취업해 작품에 참여하면서 경험도 쌓고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언제든 독립 작가로 활동할 수도 있고, 과거와 달리 채색, 라인, 배경, 콘티, 각색, 스토리 등 단순 어시스턴트가 아닌 전문 작가로서 예우하는 분위기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웹툰 '보스리턴' 작가인 양세준 교수. 김민수 기자 -웹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개인 작가와 양산형 작품을 공급하는 웹툰 스튜디오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웹툰 스튜디오의 장점은 플랫폼 입장에서는 분업화를 통해 수준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팬데믹 기간 웹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했어요. 이른바 양산형 웹툰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들이 늘어난 것은 웹툰 생태계에서 공급 시장을 키운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여전히 과잉되고 있다는 거에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갈 곳을 잃은 시장의 투자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몰렸고, 창작자가 아닌 OTT 콘텐츠 제작사와 웹툰 스튜디오 등에 집중되면서 작품 생산을 양적으로 늘리는 데 집중합니다. 흥행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검증된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블코믹스까지 뜨면서 공산품처럼 쏟아졌어요. 수요가 없는 공급은 힘을 잃기 마련이죠. 이미 조정이 되고 있어요. 공정의 분화는 장점도 있지만 운용비용이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어요. 경쟁력을 잃은 일부 스튜디오들이 몇 개씩 폐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시간의 문제이긴 하지만 결국 밸런스(균형)를 찾아갈 거라고 봐요.
웹툰 스튜디오는 효율성과 퀄리티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미국형 마블코믹스처럼 라이터, 펜슬러, 잉크맨, 컬러리스트 등 작업에 공정별, 직군별로 전문화·세분화하는 방식을 차용하게 됐다고 봐요. 작가로서는 작업 참여도나 기여도에 따라 RS 지분 나눔 형태로 수익을 가져갈 수도 있고, 웹툰 스튜디오는 퀄리티를 보장하면서도 신속하게 작품을 공급할 수 있는 모델이 된 거죠. 작가들은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할 오리지널 작품을 그릴 지, 소속 협업 작가가 될 지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웹툰 작가들의 불만은 플랫폼 안에서 자신들의 작품이 잘 노출이 안 된다는 것인데, 수익과도 연결되서인 것 같다. 플랫폼사의 적극적인 프로모션(홍보·이벤트 등) 전개가 필요하다고들 한다. = 제작 스튜디오나 플랫폼은 지명도가 있고 인력과 자금이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홍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개인 작가들은 마감까지 스토리 구상과 작화를 도맡아서 하기 때문에 신경쓰기가 쉽지 않아요. 결국엔 플랫폼사에서 프로모션을 해줘야 하는데, 순위권 상위 작품에만 해주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면 요일웹툰은 요일별로 매 4년마다 거의 1.5배씩 증가했어요. 키워드 검색이나 인지도, 홍보 프로모션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작품들은 노출되기 어렵습니다. 최근 웹소설, 노블코믹스나 웹툰들 경향을 보면 문장형 제목이 부쩍 늘고 있어요. 만화 '원피스'는 지금은 유명해져서 인기 만화의 대명사지만 1997년 초기에만 해도 여성 옷으로 이해하고 해적만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거죠. 수많은 만화의 홍수 속에서 제목과 서체로 이게 어떤 장르고 어떤 취향의 콘텐츠인지 보여주는 차별화 전략인 거죠.
웹툰 플랫폼들이 성공한 넷플릭스를 연구하다보니 OTT처럼 일부는 순위로 보여주고 탭으로 영화, 시리즈, 한국영화, 외국영화처럼 큰 카테고리 정도로 구분해주는 정도로 따라가요. 넷플릭스도 수많은 콘텐츠가 있는데 대부분 일일이 검색하거나 찾아봐야 하잖아요. 독자들의 수준도 높아져서 스토리 초반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탈하는 경우도 많아요. 과거에 부활 김태원씨가 하신 말씀인데요, "예전에는 음악을 만들 때 4분 중 1분 이상 전주가 들어갔는데, 음원다운로드 시대가 되면서 30초 미리 듣기만 되니까 초반에 무조건 클라이막스를 넣어야 하는 식으로 바뀌게 됐다"고 합니다. 웹툰도 그런 플랫폼 운영 방식에 크게 좌우됩니다. 지금처럼 순위 중심이 아니라 최소한 장르별 카테고리와 라벨링만 돼도 어느 정도 편중되는 것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르 편중, 플랫폼 서비스 방식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는데 해결방법이 있다면?
=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더 창의적이지 못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웹툰 시장이 호황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우리가 경험한 출판만화 시장도 한 번 망했잖아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만화판이 어려워질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습니다. 작가들을 양성하는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늘려 놓은 학생 수를 줄이거나 스튜디오들도 작품 수를 갑자기 줄이기는 결코 쉽지 않아요.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에 거품이 끼고 메이저 플랫폼에서 개선할 방안 없이 작품만 늘린다면 나중에는 누적된 충격파가 더 커질 수 있어요.
일본 만화업계에 계신 분이 제가 이런막연한 불안감을 이야기 하니 "일본만화계가 한국만화계의 방주가 되어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만약 한국 웹툰 만화 시장이 어려워진다면 수십 년 동안 견고한 시장을 정착시킨 탄탄한 일본만화시장이 충격을 흡수해줄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 얘긴 자원과 인력이 일본으로 흡수될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한국 산업이 빠르게 변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들만살아남다 보니 지금의 웹툰이라는 시장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크게 출렁거릴 때가 있었어요. 웹툰 생태계를 구성하는 업계와 창작 시스템, 양성기관, 창작자들이 문제점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국내 음악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레이블'처럼 같은 장르형 크루(Crew)를 결성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작품에 따라서는 주1회 요일연재가 아니라 10일이나 격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화하는 것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플랫폼들이 함께 고민해준다면 개인 작가들의 창의성이나 장르의 다양화, 취향 비지니스의 확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만화가협회 이사로서도 만화인들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웹툰 '보스리턴' 작가인 양세준 교수의 캐릭터와 싸인. 양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