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국방부 장관. 윤창원 기자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철거하기로 한 북한 측 감시초소(GP)들이 지상시설만 없앴을 뿐 지하시설은 멀쩡한 상태라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9.19 합의를 체결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GP 철거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고 에둘러 주장한 셈이다. 전‧현 정부 간 진실공방은 물론 남북관계에도 여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신 장관은 11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GP 상태에 대해 "위에서 보이는 감시소만 파괴하고 나머지 내부 지하는 전혀 손을 안 댄 것 같다. 바로 수리하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GP에 (병력과 장비를) 바로 투입했다는 건 지하에 기본적으로 지낼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다 파괴됐다면 지금쯤 다시 공사를 해야 했는데 공사 징후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말이 맞는다면 당시 우리 군은 단순 직무유기나 태만을 넘어 이적행위에 가까운 실책을 저지른 격이다.
우리측 현장검증반이 완전파괴된 북측 GP를 검증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남북은 2018년 12월 비무장지대(DMZ) 내 GP 11개(1개는 기념 보존)씩을 시범철거한 뒤 상호 검증했다. 7명의 검증반이 1개 GP를 담당해 77명씩을 교차 투입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11곳의 서로 다른 GP에 파견된 77명의 정예요원들이 북한에 모조리 속아 넘어간 결과가 된다. 북한 기만전술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현실성이 낮은 얘기다.
당시 남북군사회담 수석대표였던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중장)은 "해당 지형을 가장 잘 아는 대령, 중령들을 엄선해서 올려보냈고, 레이저 장비까지 이용해서 지하벙커 유무를 샅샅이 조사했다"며 "그 사람들이 전부 다 허위로 보고했다는 얘기냐"고 강한 비판조로 말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예비역 장성도 "9.19를 떠나 군사적 필요성 때문에라도 (지하시설을) 철저히 확인해보라고 했는데 특별한 게 없다고 보고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북한 GP의 지하시설 판단 근거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했다. 국방부도 감시장비 등을 이용한 북한군 동향 파악 결과라는 것 이상의 답을 내놓지 않았다.
국방부는 당시 검증반원들을 상대로 한 진상 파악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정부의 중대한 부실검증을 제기하면서 정작 진실의 열쇠를 쥔 당사자들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다.
진짜로 북한 GP의 지하시설이 온존하고 있다면, 조직 운영 논리상 뒤늦게나마 이들의 검증실패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로선 딜레마적 상황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