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나, OCI 입사했다."
"네? 어디요?"
"동양화학 말이야."
취업과는 무관해 보이던 대학 선배가 어느날 우연히 마주치자 입사 성공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OCI보다는 동양화학이 더 익숙할 때였다.
"우리 회사는 말이야 현금이 빵빵해. 제설제로 쓰이는 염화칼슘 알지? 그걸 독점 공급하거든."
염화칼슘이면 만들기도 어렵지 않은 무기 화합물인데다 길거리에 뿌려질 것이니 정제 과정이나 순도를 그리 신경쓸 필요도 없을 것이고 또 정부나 지자체를 상대로 영업을 하니 돈 떼일 염려도 없을 터. 여기에 겨울 한 철 장사해 1년 내내 먹고 산다니 이보다 더 환상적인 회사가 있을 수 있을까!
애사심 가득 찬 입사 초년병 선배의 회사 자랑이 과장이었겠지만, 여하튼 OCI 하면 아직도 '염화칼슘'이 자동 연상된다.
제품이 곧 기업이 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초코파이'다. 지금은 몇몇 회사에서 '초코파이'를 만들고 있지만 국내 원조는 누가 뭐래도 '오리온' 초코파이다.
불량식품이 판치던 1970년대 중반 처음으로 맛봤던 '오리온 초코파이'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쿠키 종류도 흔치 않았고 '~깡'이나 '~땅' 일색이었던 당시 과자 시장에 '파이'라는 생소한 개념의 제품이었던데다 그 비싼 초콜릿을 듬뿍 입혔으니 그 맛이 고급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1974년 국내 첫 출시 이후 허기진 훈련병들의 최애 간식으로, 러시아 등 동유럽에서는 K-과자의 맏형으로, 금단의 땅 북한에서는 장마당의 인기 상품으로 여전히 장수하고 있다.
초코파이. 오리온 제공 하지만 염화칼슘과 초코파이로 대표되던 기업들이 새해들어 전혀 다른 분야의 기업들을 잇따라 인수·통합하면서 눈길을 끝고 있다.
OCI그룹이 국내 처방약 매출 1위 제약기업인 한미약품그룹과 통합하고 오리온그룹이 항암신약 개발 분야 선두 바이오 업체인 '레코켐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하기로 한 것.
그동안 대기업을 중심으로 전통 제조업종 기업들이 제약 바이오 분야로 진출한 것은 있어 왔지만 제약 바이오 분야 '선두' 기업들을 '인수'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한미약품의 경우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서는데다 각종 신약 개발과 기술 수출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 연구개발 기업이다.
레고켐바이오는 최근 항암 신기술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는 '항체-약물 접합체(ADC)'기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대표적 바이오 업체다. ADC 기술은 암세포에 반응하는 항체에 약물을 결합함으로써 암세포만 선별적으로 사멸시켜 항암 치료 과정의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이다.
OCI그룹의 지주사인 OCI홀딩스는 7703억 원을 투입해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의 27%를 획득,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 모두를 통할하게 된다.
오리온그룹 역시 5487억 원을 들여 레고켐바이오 지분의 25.73% 획득해 최대주주가 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이처럼 제조업 중심의 OCI와 오리온이 제약 바이오 분야라는 전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것은 새로운 먹거리 발굴 차원이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제약 바이오 분야의 무한한 가능성과 거대한 수익성이 제조기업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라 OCI그룹은 지난 2022년 어린이 감기약 '코리투살'로 유명한 중견 제약사 부광약품을 인수하기도 하는 등 제약 바이오 분야 진출을 시도해 오고 있었다.
오리온그룹도 2020년 중국의 국영 제약업체인 산둥루캉의약과 합자법인인 '산둥루캉하오리요우'를 세웠다. 2022년에는 오리온바이오로직스도 설립하고 국내 바이오 기업인 알테오젠 인수 협상에도 나서는 등 바이오 분야 진출을 꾸준히 시도해 왔다.
제약 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문제'가 인수와 통합으로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한미약품은 창업주인 고 임성기 전 회장의 사망 이후 상속에 따른 세금 5400여억원을 내기 위해 임 전 회장의 부인이자 현 한미약품그룹 회장인 송영숙 회장과 장녀이자 한미약품 사장인 임주현 사장의 지분을 OCI에 넘겼다는 것.
레고켐도 창업주인 김용주 대표 설명을 통해 "안정적 운영을 위해 20% 이상의 지분을 갖는 최대주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에너지와 석유화학, 식음료와 제과 등 탄탄한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는 두 기업이 생소한 제약 바이오 분야에 진출한 것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전밍이다.
제약 바이오 분야는 블록버스터급 신약만 개발한다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이에 도달하기까지 장기간 거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신약 개발에만 10년, 1조원 정도를 보고 있다. 이것도 100%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국내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평소 현금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이나 '드링크'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OCI나 오리온이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제조업 마인드'를 고수한다면 제약 바이오 업계에서 성과를 내오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