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장려금 이억원 전달하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연합뉴스부영그룹이 저출생 극복을 위해 임직원에게 출생 자녀 1명당 1억원씩을 지원하기로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만 현행 세제 하에서는 1억원을 지급하면 3800만원을 세금으로 내며 실수령액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어서, 부영은 이 돈을 증여 형태로 지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출산장려금에는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해서 이런 지원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제 하자고 제안하면서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는데요. 출산장려금에 세금을 내지 않도록 세제가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정부가 뭔데 3800만원을 가져가나요?
사실 출산장려금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한 회사가 부영이 처음은 아닙니다. 앞서 유한양행 등 일부 기업이 임직원 자녀 출산시 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해서 주목 받았고 상당수의 기업들이 자녀출산축하금 성격으로 많게는 수백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돈들은 급여 형태로 지급되어 왔는데, 원래 급여에 더해지기 때문에 이 돈을 받은 해에 예상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연봉 4900만원인 직장인은 원래 월급에 소득세율 15%(1400만~5000만원)가 적용됐는데 자녀를 출산해 회사로부터 200만원을 받아 그 해 5100만원을 받았다면 소득세율 24%(5000만~8800만원)가 적용(공제 전)되어서 세금을 내게 되는 겁니다.
부영의 사례를 적용해 볼까요? 연봉이 5000만원이었던 직원이 출산장려금으로 1억원을 받았다면요? 그해 연소득이 1억5000만원이 되기 때문에 소득세율이 38%에 달하게 됩니다. 원래는 15%가 적용됐으니 훨씬 많은 세금을 내게 되는 셈입니다. 1억원에 대해선 세금만 3800만원을 내는 겁니다. 회사에서 직원에게 1억원을 지원해주고 싶었지만 직원이 실제 받게 되는 돈은 그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 되는거죠.
이와 관련해 한 과세당국 관계자는 "지금까지 부영처럼 큰 금액을 지급한 전례가 없어서 관련 논의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부영이 출산장려금에 대한 큰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3800만원 안 내고 1억 받을 순 없나요?
출산장려금 전달하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연합뉴스직원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혜택에 대해 고민하던 부영은 '급여' 대신 '증여' 방식으로 1억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증여세는 주는 사람 기준으로 세율이 적용되는데요, A가 B에게 주는 돈은 합산 1억원까지는 10% 세율이 적용됩니다. 부영이라는 '법인'이 직원의 '자녀'에게 1억원을 주면 증여세율 10%가 적용되는 거죠.
부영이 1억원을 직원 자녀에게 증여 형태로 줬다고 해보죠. 막 태어난 아이가 신고를 할 수는 없으니 부모인 부영 임직원이 '회사가 우리 아이에게 1억원을 증여했다'고 과세당국에 신고를 하고 1000만원의 세금을 내면 되는겁니다. 다만 부영이 법인 차원에서 비용처리는 받지 못합니다.
다만 과세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부영 임직원이 '우리 아이가 1억원을 증여 받았다'고 신고하더라도 과세 당국이 이걸 '증여'로 판단할 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1억원을 받는 사람이 '직원의 자녀'로 한정되고, 엄밀히 말하면 근로소득의 일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세무당국이 증여세 대신 근로소득세를 적용하라고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는데요. 이 말이 뭐냐면, 부영 임직원이 '증여'로 신고하더라도 과세당국이 '이건 급여다, 그러니 소득세율(38%)을 적용해서 그만큼 세금을 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부영 관계자는 "관련해서 유권 해석을 받지는 않았다"면서도 "법인이 직원 자녀에게 직접 증여를 하는 형태로 출산장려금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어서 일단 법인이 직원 자녀에게 직접 지급하는 형태로 집행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재부, 출산장려금 세제혜택 검토 착수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연년생 남매를 둔 조용현 대리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부영그룹부영의 출산장려금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자 세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이를 집행하는 국세청은 이런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지 검토에 나섰습니다.
한 과세당국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출산 지원이 확대될 수 있도록 세재를 개편할 수 있을지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업이 출산, 보육과 관련해 직원에게 지원금을 주는 경우 상당 부분을 비용으로 인정해줘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지원금을 받은 사람의 세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다른 과세당국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출산장려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지급하는 기업의 숫자와 지급되는 돈의 규모 등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초기 단계"며 "기재부와 국세청 모두 이런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출산장려금 수령자에 대해서는 아동수당이나 부모급여처럼 정부가 아동에게 직접 지급하는 돈에 대해서는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는, 즉 증여세를 내지 않는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아동수당이나 부모급여를 아동 명의로 된 계좌로 받으면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할아버지 회사에 아빠가 다니는데 출산장려금 쏴주면?"
연합뉴스과세당국과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출산장려금이 역할을 할 수 있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부영의 화두에는 공감하는 분위깁니다. 다만 관련 제도가 도입될 경우 편법 증여로 활용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세제가 개편돼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개인사업체나 법인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아들의 자녀, 그러니까 손자녀가 태어났을때 실제로는 증여를 하면서 출산장려금 기부면세 제도를 활용해 증여세를 회피하는 형태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며 "이런 부분까지 허용할 것인지 예외를 둘 것인지 등을 검토해서 제도가 설계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우려를 과세당국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과세당국 관계자는 "제도 개선이 된다면 (기업들의 출산장려금 지급 확대를 통한 저출생 문제 극복이라는) 좋은 취지는 살리되 이런 제도가 조세회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손 볼 필요가 있다는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기재부는 개인 자격은 제외하고 법인 자격으로 기부하는 경우에만 세제혜택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법인 신설 및 운영 절차가 자산가 기준에서는 까다롭지는 않다는게 세무업계의 분석입니다.
또 다른 세무업계 관계자는 "출산장려금 공제가 도입된다면 '특수관계인', 그러니까 할아버지,할머니 회사에 엄마,아빠가 다니는데 손자녀에게 출산장려금 명목으로 돈을 주는 경우, 또는 8촌 이내 가족기업에서 지급되는 경우에는 제외한다는 식의 단서 조항이 달려야 이 제도가 증여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출산장려금에 대한 세제가 손 봐지고,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마중물로 저출생 문제 해결에 작게나마 기여하게 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