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만해도 경기도 하남시 거리 곳곳에 총선 관련 현수막이 난립했다. 최근 현수막은 모두 철거됐지만 이와 관련 후보들 사이 선거법 위반 관련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자 제공"횡단보도마다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신호등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13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위례신도시 아파트 단지 앞에서 만난 주민 김모(57)씨는 한 달 전 상황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다행히 최근 주변 도로에서 선거 현수막은 사라졌지만, 총선을 앞두고 경기도 하남시의 분위기가 '혼탁'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이유는 현역인 최종윤 의원(더불어민주당)의 불출마 선언을 한데다 선거구 분구가 가시화되면서 예비후보자만 19명이나 몰렸기 때문이다. 한 달 전만해도 이들 예비후보들은 앞다퉈 시내 곳곳에 공약과 공적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김씨는 "하남에 10년 넘게 살면서 2번의 총선을 겪었는데, 이 정도로 많은 후보가 몰린 적은 처음"이라며 "근데 현수막에 적힌 이름만 다를 뿐 내용도 다 비슷해서 도움은 안 되고 시야 확보에 방해만 됐다"고 토로했다.
고발·신고 난무…과열·혼탁 양상의 선거전
지난달 16일 덕풍3동 행복복지센터에서 열린 '주민과의 대화'에서 서울 편입과 관련된 입법발의 내용을 발언하고 있는 이용 의원. 하남시 유튜브 캡쳐후보들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발·신고도 난무한 상황. 국민의힘 김기윤 예비후보(경기도교육감 고문 변호사)는 앞서 3명의 후보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공직선거법상 지난달 12일까지 현수막을 철거했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공직선거법 제90조 제1항에 따르면 선거일 전 120일부터 (예비)후보자의 사진·성명을 명시한 현수막을 설치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 출마 예정인 후보자는 지난달 12일 자정부터 기존에 설치했던 현수막을 모두 철거해야 한다.
하지만 예비후보 3명은 12일 이후에도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변호사는 지난달 16일 덕풍3동 행복복지센터에서 열린 '주민과의 대화'에서 서울 편입과 관련된 입법발의 관련 내용을 발언한 이용 의원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직선거법 제111조 국회의원은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직무상의 행위 그 밖에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보고회 등 집회, 보고서 또는 축사·인사말을 통해 의정활동을 주민에게 보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적 가리지 않는 경쟁…정치 혐오 우려
이용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신고하는 김기윤 경기도교육감 고문변호사. 김기윤 경기도교육감 고문변호사 제공이처럼 후보자간 과잉 경쟁은 당적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김 변호사가 고발한 예비후보 명단에는 같은당 이용 의원(국민의힘)도 포함됐다.
김 변호사는 "같은 당끼리 싸우지 말라는 시민들의 요청도 있었지만, 같은 당이라면 더욱 엄격한 잣대로 사안을 봐야 한다"며 "그래야 동등한 입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용 의원은 후보 간 '흠집내기'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지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 의원은 "현수막 설치와 철거를 관내 사회기업에 맡겼는데, 업체가 실수로 제때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았다"며 "결국 수사대상은 내가 아니라 시민들이 운영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네거티브는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시민들을 위한다면 공약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탁 양상으로 흐르는 선거 분위기에 다른 예비후보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민병선 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은 "예비후보 19명 중 11명이 국민의힘 소속"이라며 "예비후보가 너무 많다 보니 후보자들끼리 벌써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고소·고발전은 오히려 시민들이 정치를 등한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절실한 선거구 획정…여야 갈등으로 지연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대비 모의개표 실습이 진행되고 있다. 박종민 기자과열된 선거전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선거구 획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남시 선거구가 하나에서 둘로 분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쟁률이 19대 1로 전국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다.
김광석 위례하남입주자연합회장은 "하남시 선거구가 갑과 을로 나뉘는 것은 분명한데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고 있어 우리 지역구에 누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이들의 공약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며 "누가 서울 편입, 교통 문제 등 이슈에 제대로 대응할 인물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유권자가 제대로 된 인물에 한 표를 던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선거구가 획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