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가입 국내 기업 중 2022년 현황을 공개한 31개사의 총 전력 소비량은 60TWh에 달한다. RE100 보고서 캡처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글로벌 캠페인 RE100에 가담한 국내 기업체들의 전력소비량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비중이 큰 원자력과 화석연료 발전이 업계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장애요인이다.
15일 RE100 사이트에 공개된 2023년도 공시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도인 2022년 기준 국내 회원사들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6만173GWh다. '재생에너지 전기 100% 사용'을 추구하는 RE100에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36개사가 가입해 있다. 이 가운데 RE100에 현황을 제출한 31개사의 합산치다.
31개사의 2022년 연간 전력 소비량은 그 해 수도권 7686만 가구의 연간 소비량(3만8072GWh)의 약 1.6배다. 수도권 모든 가구가 1년 반을 쓰고 남을 전기를 RE100 회원사들이 1년간 소진한다는 얘기다. RE100에 자료를 내지 않은 5개사의 사용량까지 감안하면 수치는 더 커지게 된다.
2022년 국내 발전량은 RE100 회원사들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 한국전력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2022년 총 발전량은 59만4392GWh인데, 태양광·풍력·수력·폐열·부생가스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은 5만5852GWh에 그쳤다. 31개사 수요의 93% 수준이고, 자료 미제출 업체 포함시 비중은 더 작아진다.
회원사 개별 공시자료로 따지면 공급 부족이 더 커보인다. 수출 주력인 반도체·자동차 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로는 2022년 전력 소비량이 삼성전자 3만7020GWh, SK하이닉스 1만1940GWh다. 현대자동차는 3658GWh이고, 기아도 비슷한 수준의 전기를 썼다. 이들 4개사만으로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초과한다.
다만 이는 각사의 해외 사업장까지 포함한 전력 사용량인 만큼, 국내 상황과 직결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대목은, 국내외 비교우위를 확인할 수 있는 입장의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조달이 용이한 해외로 투자확대를 할 여지를 보여준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5년마다 내는 '발전 단가 전망' 보고서 2020년판에 따르면, 균등화발전비용(LCOE)에서 우리나라는 가격 경쟁력이 약하다. 중간값 기준으로 태양광 발전은 MWh당 96.6달러로 중국(50.7달러), 인도(35.9달러), 브라질(46달러), 미국(34.4~54.7달러)보다 비쌌다. 육상풍력(113달러)이나 해상풍력(161달러) 역시 이들 나라가 두자리수 비용인 것과 차이를 보였다.
우리나라는 지형조건상 재생에너지 생산 단가가 불리하나, 인도·중국은 광활한 영토에서 재생에너지를 대량 생산 중이고 유럽·북미는 연결된 전력망으로 이웃나라 재생에너지를 손쉽게 구매한다. "재생에너지 100%를 해야만 하는 극한 상황에 몰린다면 저렴하고 용이한 환경을 택하는 게 당연하다"(업계 관계자)는 전망이 없지 않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은 재생 에너지 조달에 고충을 토로했다. RE100 보고서에는 "재생에너지 조달에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한 국가는 한국이다. '조달 옵션 부족'과 '비싼 가격', '한정된 물량'이 장애로 꼽혔다"고 적시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영토가 큰 나라들에 비해 불리하다. IEA 보고서 재구성 결국 국내 신재생 발전이 RE100 수요에 못미친다는 게 확인된다. 발전 산업이 화석연료와 원전 위주를 벗어나지 못해서다. 2022년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은 석탄화력이 32.5%, 원자력이 29.6%, 가스화력이 27.5%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지난해 역시 석탄 31.5%, 원자력 30.7%, 가스 26.8%로 큰 차이가 없다.
당초 정부 계획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2%로 끌어올리고, 원자력 비중은 23.9%까지 낮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 정권 들어 신재생 21.6%에 원자력 32.4%으로 변경됐고,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달성' 국정과제를 시작으로 원전산업 진흥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국제 에너지싱크탱크 엠버(Ember)의 관련 보고서는 우리나라를 "뒤쳐졌다"고 비판했다. 엠버는 "2022년 한국의 전력 생산량에서 풍력·태양광 비중은 5.4%(32TWh)에 불과해 세계 평균 12%보다 훨씬 적다. 다른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탄소중립에 도달하려면 재생에너지 전력 정책목표를 늘려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