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기자총선에서 압승하며 의회 권력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수순으로 이재명 대표 대권 지원에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최근 발표된 당헌·당규 개정안은 이 대표의 당대표직 연임과 대권에 길을 터준다는 평가를 받으며 논란에 휩싸였지만 당 지도부는 여전히 추진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민주 당헌당규TF 개정안, '이재명 당권-대권 일치' 평가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사진취재단
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 지도부는 5일 국회의원-전국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당헌·당규 개정안과 관련한 의견을 수렴한 뒤 개정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최고위원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당헌은 중앙위원회, 당규는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장경태 최고위원이 단장을 맡고 있는 당헌·당규 개정 태스크포스(TF)가 만든 개정안 시안엔 당대표의 대선 출마 시 선거일 1년 전까지 사퇴하도록 하는 규정(당헌 25조)에 예외 조항을 두고, 부정부패 연루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자동 정지하는 규정(당헌 80조)을 폐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여기에 국회의장단 및 원내대표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 20%를 반영하는 안까지 함께 논의되면서, 전체적으로 권리당원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이 대표의 당권과 대권을 일치시키는 개정안이란 평가가 나왔다.
당초 TF는 개정안을 속도 내서 처리하겠단 방침이었지만, 이 대표가 당내 의견을 더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대선 1년 전 당대표 사퇴 규정에 예외를 두는 부분에 대해선 "괜히 논란만 만드니 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표했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의원이 "충분히 숙의해 논의하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급속 추진에는 일단 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그러나 이후 일주일가량 진행된 의견 수렴 과정에서 공개적인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고 있다. 원인 중 하나로는 총선을 통한 현역 의원 교체가 꼽힌다. 재작년과 지난해 각각 당헌 80조, 전당대회 룰 개정 시도 당시에는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발생했다. 반대 의견을 제기한 의원들 중 상당수는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낙천됐다.
이 대표의 공식적인 '잡음 제거' 행보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대표는 연석회의에 앞서 5선을 시작으로 다선 의원들과 비공개 오·만찬 자리를 연이어 갖고 있다. 이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안과 관련한 중진 의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며 이번 개정이 자신에 대한 유불리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비이락' 개정시기에 "李대표만 위한 것 아니냐" 비판…도덕 기준 낮추는 움직임엔 "후퇴하는 느낌" 지적도
하지만 당내 물밑에서는 개정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모습이다. 대선 출마가 유력한 이 대표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25년 만에 민주당 당대표직 연임에 도전하려는 시기에, '대권가도'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당헌과 당규를 개정하는 것이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 대표 측은 당대표 임기 제한 예외 규정의 경우 개헌이나 탄핵 등으로 인한 현직 대통령의 조기 퇴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 등의 발생 없이 다른 사유로 이 대표가 대선 1년 전인 2026년 3월 이후까지 당대표직을 유지하게 되면 그해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 공천권을 위한 행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당 대표의 임기를 지방선거 공천 이후까지로 연장해 준다면 그 자체가 이 대표를 위해 당헌·당규를 뜯어고치는 것 아니겠느냐"며 노골적인 비판에 나섰다.
이 같은 당헌·당규 개정 흐름 자체가 당의 확장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대표와 중진 의원들 간 오·만찬 자리에서는 당대표의 임기나 기소 시 당직 정지 관련 규정과 무관하게 당원권 강화 방안에 대한 이견들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원권 강화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이 대표의 대표직 연임 여부가 달린 시점에 이런 개정안들이 마련된 탓에 당이 '집토끼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당 지지율이 국민의힘과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는 점이 이러한 현상에 기인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내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 일극 체제로 가니 정당 지지율이 안 올라가는 거 아니겠나"라고 일갈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대표이던 시절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 만든 '기소 시 직무 정지', '민주당 귀책 사유로 재·보궐선거 유발 시 무공천' 등의 조항을 삭제하자는 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당헌·당규 개정이 개혁성·도덕성 등을 발전시키고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높이를 낮추는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공직자로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수많은 논쟁을 통해 만들어진 조항인데 갑자기 삭제한다니 여러 가지로 후퇴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